한 아이가 태권도 학원 승합차에서 내려 눈 앞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몇 분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기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곧 울 것만 같았던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다가왔다. 여기 빈 집이 많냐는 질문에, 아이는 "네! 이 골목에서 우리 집이랑 세 집 빼고는 다 빈 집이에요. 여기도, 여기도 다 비었어요"라고 말했다. 소년의 밝은 목소리가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부산 51번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시 남구 우암동 우암뉴서울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리자, 크고 작은 아파트 단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를 등지고 큰 찻길을 따라 걷다가 우암초등학교 뒤로 펼쳐진 오르막길로 향했다. 기울어진 땅위로 군데군데 세워진 집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주황색 마을버스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면 이 동네의 끝을 볼 수 있을는지. 가파른 길을 20분가량 올라 온 몸에 땀이 배어나올 즈음, 낡고 허름한 주택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상인과 손님의 익살스런 실랑이가 벌어지는 전통시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집 걸러 두세 집이 문을 닫았다. 채소 가게 주인은 가게 앞에 앉아 동네 주민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시장이 왜 이렇게 다 문을 닫았냐고 묻자, 그들은 “말도 마라”며 손을 내저었다. 시장이 이렇게 된 지도 오래고, 뒷골목으로 가면 고양이집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시장 골목에는 장사를 했다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60~70년대를 재현해놓은 듯한 가게 터에는, 상인의 말대로 고양이만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우암동 한 켠. 이 곳은 20년 전만해도 여느 동네처럼 사람 냄새가 짙게 풍겼다. 인근에 부산 감만항과 7부두가 있어 목재 회사와 철강회사 직원들이 많이 살았다. 산을 끼고 있는 우암동의 북서쪽에도 작은 집들이 빽빽이 생겨났다.
하지만 약 20년 전부터 시작된 '아파트 건설 열풍'에서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은 우암 2동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15년간 우암동 일대에 세워진 아파트만 11단지. 이 중 대부분은 우암1동에 지어졌다. 이미 너무 낡아 손 대기도 골치 아픈 집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 생긴 집으로 가는 것이 간편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렇게 '우암달동네'를 떠났다.
50년간 우암동에서 약국을 운영해 온 박승희(75) 씨는 "10년 전부터 (주변에) 아파트 짓는다고 젊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다 나갔지. 여기는 70년대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개발 소식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재개발만 시작되면 이 일대를 다 밀어 버릴 거라는 생각에 집을 떠나는 발길은 더욱 분주해졌다. 집을 떠난 뒤 따로 철거하거나 되팔 필요도 없었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집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미 노후화돼 수리가 필요한 곳이 많았지만, 주민들은 ‘어차피 재개발 될텐데’라는 마음으로 불편을 안고 살아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 게 벌써 10년이 흘렀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재개발할 방법이 없으면 하지를 말아야지. 10년이 넘게 질질 끌어오니깐 도로정비사업 하나, 하수구 정비 하나 못한다”며 “정부가 여길 방치했지. 우암동 슬럼화의 주범은 시(市)야 ”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 집이 더 많다는 게 주민들의 전반적인 대답이었다. 빈 집이 늘어갈수록 남은 사람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 범죄 사건이 보도되는데, 그게 바로 내 옆집, 뒷집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해 전 부산의 사상구 빈 집터에서 발생했던 '김길태 사건'은 이들의 걱정에 한 몫을 더했다. 어두운 밤길에 이 곳 주민들을 지켜줄 거라곤 가로등 불빛 하나. 할머니들은 밤이 되면 사람이 무서워 절대로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우암동 '빈집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그래서인지 열악한 환경에도 주민들은 별 대책이 없다.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다. 이 곳 주민들은 10년 전부터 들려온 재개발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방법이 없지. 누가 여기와서 살라고 하겠노. 내가 죽으면 우리 집도 빈 집인데 뭐..”라고 말하는 한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체념섞인 한숨만 짙게 깔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