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직원, 몰카 찍다 덜미..."직장 내 성추행 경험 있다" 34%, 70%는 "상사라 신고 못했다" / 신예진 기자
최근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잇따라 논란이 되는 가운데, 미국계 한국 씨티은행에서도 사내 성추행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 사건은 근무 중에 벌어져 네티즌들은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동시에 직장 내 만연한 성추행 문화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한국 씨티은행 본사에 근무 중인 차장급 직원 A 씨가 지난 9월 말 근무 시간에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내 여직원 B 씨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사실이 적발됐다. 카메라로 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A 씨의 몰카 범행은 이상한 낌새를 느낀 B 씨가 팀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문제의 사건을 보고받은 팀장은 휴대전화 사진 공개를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A 씨를 추궁했다. 이후 해당 부서에 즉각 신고했다. 당시 A 씨의 휴대전화 사진 앨범에는 여성들의 다리 사진이 다수 저장돼 있었다고 한다.
해당 사건이 불거진 후, 씨티은행은 A 씨를 직위 해제했다. A 씨는 조사 과정에서 정신과 진료 기록 등을 내세워 해명했다. 시사위크에 따르면, 시티은행은 “조사 진행 단계로 징계위원회에 A를 회부할 예정”이라며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넘도록 A 씨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있어 사측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직장 내 성추행 파문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기업의 갑을 권력에 의해 그동안 은폐돼 온 사내 성추행 문제가 이제야 수면 위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직적인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 눌려 피해자들이 성추행을 당해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못한다는 것.
실제로 지난 7일 구인구직 사이트 인크루트가 '조직 내 성추행 경험'에 대해 3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34.1%가 성추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성추행 상대는 ‘회사 상사’가 52.7%, ‘고위급 임원’이 12.7%로 대다수가 갑의 위치에 있었다.
주목할 것은 피해자 대다수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사측에 알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추행을 경험했다는 응답자 중 70.9%가 사측에 알리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큰 이유는 '괜히 큰 문제를 만들기 싫어서'(33.8%)였고, '가벼운 신체 접촉이라서 오히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정확한 증거가 없어서', '상대가 선배 혹은 상사여서 안 좋은 이미지를 줄까봐' 등이 뒤따랐다.
피해자들은 성추행에 대한 법적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시에 직장 차원에서 성추행 예방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벌금 부과 대신 실형 등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용기를 내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백했는데도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벌금형으로 그칠까 걱정돼 신고하지 않는 직원들이 꽤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신입 시절 내 허벅지에 올린 팀장의 더러운 손이 아직도 느껴진다”며 “나도 당시에는 웃으며 상황을 피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네티즌은 “성추행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들은 신상과 얼굴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며 “일부 남자 직원들은 회식을 즐기며 알코올의 힘을 빌려 은근슬쩍 여직원들의 신체를 만지는데 얼마나 기분 나쁜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열을 올렸다. 그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와 관련된 수사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노원 한국공인노무사회 사무총장도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직장 내 성추행을 막는 방법으로 예방 교육과 관련 법 개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직장 내 성희롱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 행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관련 법 개정 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등 사전 예방 대책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