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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4강전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우리보다 야구역사가 30년을 앞서는 일본을 꺾은 것은 물론 야구를 국기로 삼고 세계 야구의 종주국이라고 자신하는 미국까지 이기는 것을 볼 때 우리 야구가 이제 세계 정상권에 도달했구나 하는 뿌듯한 느낌을 가진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어디 야구뿐이랴. 2002년 월드컵에서는 축구가 세계 4강에 도달했고 지난번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 부문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스포츠뿐 아니라 우리나라 연예ㆍ오락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각국의 팬들을 뜨겁게 달구고, 이제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반열에 오른 회사들이 있고 전자통신기기ㆍ자동차ㆍ조선 등 몇몇 상품은 세계 일류상품으로 도약했다.
이런 성과를 보면 너무도 자랑스럽다. 우리 선수들이 세계 최강이라는 팀들과 맞붙어 싸울 때 우리는 함께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른다. 우리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 제품으로 TV를 보고 우리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달릴 때 덩달아 신이 난다.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가슴 벅찬 시대가 되었다고 다들 긍지를 느낀다.
그러면서도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야구가 일본, 미국을 이겼다고 우리 야구가 그들보다 센 것인가. 우리 축구가 이탈리아, 스페인을 이겼다고 그들보다 강해진 것인가. 우리 상품이 수출이 잘된다고 우리 경제가 그들보다 나아진 것인가. 우리 연예인이 외국 팬들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우리 문화산업이 그들보다 우월한 것인가 물어본다면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축구와 야구 대표선수가 손꼽을 정도라면 미국 일본 유럽의 선수들은 수십명의 비슷비슷한 선수를 가졌고, 한류가 이웃 아시아 나라들에 인기가 있다지만 이웃나라 연예인들은 이미 할리우드 등 세계시장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다. 몇몇 첨단 기기 상품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라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대부분의 우리 상품들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질 낮은 상품이 대부분인 게 세계시장에서의 현주소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선수나 상품을 배출하고 생산해내는 바탕이 얼마나 탄탄한가 하는 것이다. 유럽 축구나 미국, 일본의 청소년 및 학교 스포츠의 터전은 엄청나다. 어릴 때부터 각 지역의 학교 및 클럽 리그를 통한 스포츠 활동은 운동선수들뿐 아니라 학부형과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까지 지배할 정도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지만 몇 개 방송국 중심으로 제작되고 소비되는 데 비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프로덕션 시장이 활성화돼 엄청나게 많은 프로그램들이 경쟁을 통해 품질을 높이고 있다. 우리처럼 얄팍한 시장이 아니다.
경제 문제는 이보다 더하다. 우리의 첨단제품들이 외국 시장에서 많이 팔려 수출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그 중의 상당 부분은 기술료나 핵심 부품ㆍ소재들을 사오는 데 쓰기 때문에 많이 팔면 팔수록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컴퓨터나 IT 관련 산업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들을 이용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생산해내고 있으나 그 바탕이 되는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은 대체로 미국 등 선진국 제품이 많아 이 역시 로열티(기술료)를 많이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은 너무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부분에만 투자하고 신경을 썼을 뿐 보이지 않는 바탕과 내면의 충실에 힘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에 보이는 첨단 부분에 집중 투지하면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으나 그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탕과 몸통 부분에 투자하는 것은 그 결과가 잘 드러나지 않으나 그것이 바탕이 되어 크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제 우리도 손쉽고 눈에 띄는 껍데기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힘과 시간이 많이 드는 몸통 부분을 살찌우는 데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 그래야 성장의 폭이 넓어져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