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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팔리아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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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팔리아치>를 보고
  • 부산광역시 유혜민
  • 승인 2014.06.10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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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치른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는 조금은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 마음으로 교양 과제를 하기 위해 부산문화회관의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장인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보인 것은 바로 오케스트라였다. 원래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 피트’라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공간에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와 있어서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무대 위 오케스트라 앞의 협소한 공간에서 어떻게 오페라를 공연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곧 연주자들이 착석하고, 지휘자가 등장하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웅장하고 경쾌한 연주와 함께 관객석 쪽에서 광대분장을 한 토니오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토니오는 관객들과 대화하듯이 노래하며 무대 쪽으로 걸어갔는데, 내가 통로 쪽에 앉아 있어서, 그가 내 바로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극의 서막인 이 부분에서 나는 관객들과 등장인물이 교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니오가 퇴장하자, 지휘자가 객석으로 내려와 오페라 <팔리아치>에 대한 해설을 들려주었다.

<팔리아치>는 작곡가 루지에로 레온카발로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며,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 안에 극이 있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등장인물은 극단 단장인 토니오(극 중 극에서 팔리아치), 그의 아내인 네다(극 중 극에서 콜룸비네), 곱추이자 단원인 토니오(극 중 극에서 타데오), 단원 베페(극 중 극에서 하를레킨), 마을 청년이자 네다의 애인인 실비오 등 총 다섯 명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1막에서 토니오가 네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구애한다. 네다는 곱추라는 이유로 토니오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오가 네다에게 강제로 키스하려고 하자, 네다는 채찍을 휘둘러 그를 내쫓는다. 그리고 네다가 진짜 사랑하는 남자인 실비오가 등장한다. 둘은 저녁 공연이 끝난 후 함께 도망가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토니오가 목격해 카니오에게 일러바치고, 화난 카니오가 단검을 빼들고 실비오를 죽이려고 쫓아가지만 놓쳐버린다. 카니오는 다시 돌아와서 그 남자가 누구냐고 네다를 추궁한다. 끝내 네다가 대답을 거부하자, 카니오는 그녀를 죽이려고 하지만 베페가 이를 말리고 공연을 준비한다.

2막에서 극 중 극이 시작되고 단원들은 각자 역할에 따라 연기하기 시작한다. 극 중 팔리아치와 콜룸비네는 부부인데, 콜룸비네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따로 있다. 그는 바로 하를레킨이다. 공교롭게도 네다는 현실과 비슷하게 야반도주하는 부정한 남녀를 연기하게 된다. 팔리아치 역을 맡은 카니오는 연극인줄 알면서도 이 상황이 현실인 듯 화가 치밀었고, 진짜 그 남자의 이름을 대라며 네다를 다그친다. 네다는 당황했지만 끝까지 연기를 계속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카니오는 토니오에게서 단검을 받아 네다를 순식간에 찌르고 만다. 관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실비오가 무대 위로 뛰어들었지만, 그 역시 카니오의 단검에 찔려 네다와 함께 숨을 거두고 만다. 관객들이 놀라 웅성거리고 혼비백산하는 가운데 카니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웃어라 광대여 웃어라”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넋이 나간 듯이 단검을 떨어뜨리고는 관객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코미디는 끝났다.” 이렇게 극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내가 극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인물은 바로 카니오이다. 아무래도 극 중의 극에서 그의 이름이 오페라의 제목과 같은 ‘팔리아치’라서 그런 것 같다. 카니오는 2막에서 우발적으로 그의 아내인 네다와 그녀의 연인 실비오를 살해한다. 그러나 이것을 꼭 나쁘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카니오는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포옹과 키스를 나누며 함께 달아나기로 약속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공교롭게도 극의 내용이 그가 겪은 현실과 매우 흡사했고, 아내에 대한 큰 배신감이 극에 달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물론 살인을 저지른 것은 어느 면에서 보든지 잘못된 일이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가 그녀의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아꼈기에 그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잔인한 일을 저지른 데에는 남편이 있는데도 지조를 지키지 않고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눈 네다의 잘못이 더 크다. 살인을 저지른 그를 동정하는 건 아니지만, 아내의 행동으로 인해 느낀 배신감과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서 그런 장면을 또 보는 것이 카니오로서는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클래식 음악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의 과제로 뮤지컬과 오페라의 차이점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공연을 보고나서 그 때를 떠올려보니 나에게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세 가지이다.

뮤지컬과 오페라의 첫 번째 차이점은, 뮤지컬은 대사와 노래, 춤을 적절히 섞어가며 연극 형식을 취해서 공연을 진행하는 반면에, 오페라는 간간히 대사를 섞긴 하지만 주로 노래로 극을 진행하는 음악극 형식을 취해서 공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사가 많았던 뮤지컬에 비해서 오페라는 대사가 확연히 적고 노래가 주를 이루었다.

두 번째로는 뮤지컬은 각 나라의 언어에 맞게 가사를 고쳐서 노래를 부르는 반면에 오페라는 원곡 그대로 부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뮤지컬을 해보기도 했고 본 적도 있는데, 중간 중간 들어가는 영어 가사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뮤지컬은 한국어로 노래가 불린다. 그런데 이번에 본 오페라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곡이 원곡으로 불렸다. 다행히 무대 뒤의 스크린에서 노래에 맞추어 가사가 나와서 관객들이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세 번째 차이점은 뮤지컬은 녹음된 CD 등을 이용해서 반주를 하는 반면에 오페라는 오케스트라가 직접 반주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장은 정식 오페라 홀이 아니었고 작은 공연장이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피트 없이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서 연주했지만, 그로 인해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 생생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 빠르게 전개되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박진감이 넘쳤다. 예전에 뮤지컬이나 다른 연극은 몇 번 본 경험이 있지만, 오페라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품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고 갔고, 지휘자가 설명을 잘 해주어서 어려울 수도 있었던 오페라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평일 오전에 공연이 있어서 같이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아 혼자 공연을 보고 왔는데, 오히려 극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교양과제로 인해 공연을 보게 되었지만, 처음 본 오페라가 굉장히 강렬하고 감명 깊었기에 앞으로도 시간 날 때마다 이런 공연을 종종 찾아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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