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 아래 ‘국민청원’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청와대는 30일간 20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에 한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대표자로 나서 공식 답변을 내놓고 있다.
하루 평균 600여 건의 청원이 쇄도할 만큼 국민의 열띤 참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까지 정부는 ‘청소년 보호법 폐지’, ‘낙태죄 폐지 및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주취 감형 폐지’ 외 총 9가지 청원에 답변했다.
정부가 가장 최근에 답변한 청원은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이다. 답변자로 나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7일 <11시 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공식 견해를 내놨다.
윤 수석은 “교과서 집필 기준과 검정 기준에 양성 평등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양적, 질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이번 청원을 계기 계기로 2011년 이후 멈춘 ’초중고 인권교육 실태조사’를 연내에 재개해 성 평등 교육을 포함한 체계적인 ‘통합 인권교육‘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답변을 내놓기도 전 국회에서 먼저 응답한 청원도 있다. 대전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5세 딸을 잃은 피해자의 아버지가 올린 ‘대전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교통사고...가해자의 만행과 도로교통법의 허점’이라는 제하의 청원이 바로 그것.
해당 청원은 현행 도로교통법상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는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도 도로교통법 12대 중과실로 적용해 가해자에게 엄중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당 청원은 한 달 새 21만 9395명의 동참을 끌어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지난 14일 “아파트 단지 내 도로의 사각지대를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며 도로의 범위를 아파트 단지 내 도로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국민의 여론을 대변하며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는 가운데, 청와대는 권한 밖의 청원으로 난색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21일 국회 운영위 업무보고에서 “(일부)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내용들이 올라온다”며 “한 의원님의 문제나 국회와 관련한 것이 올라오거나 하면 저희가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언급한 ‘한 의원님에 관한 청원’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의 평창올림픽 위원직 파면을 요구하는 청원이다. 나경원 의원은 평창올림픽이 '평양' 올림픽이 될지도 모른다며, 하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반대하는 서한을 국제올림픽위원해(IOC)에 보내 국민청원 대상에 올랐다. 해당 청원은 36만 905명이 동참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는 청원 중 가장 많은 참여 인원을 기록했다.
국민청원은 여론의 공론화와 소통의 장 구실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대체로 호평받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도 다수 제기된다. 국정 현안과 관련된 사안이 아닌 개인 민원성 청원이 쇄도하고, 욕설과 비속어 사용 청원이 연일 게재되면서 일각에서는 국민청원이 진흙탕 판으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익명의 청원자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된 내용의 허위 청원을 올릴 경우 문제는 커진다. 실제로 한 청원자는 25일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청원 글을 올린 지 하루 만에 “장난으로 올렸다”며 이튿날인 26일 글 삭제를 요청했다. 이 밖에도 팀 추월 경기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 청원 등 청와대 권한 밖의 고발성 청원이 쇄도하자, 국민청원이 ‘인민재판장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박종률 CBS 논설실장은 노컷뉴스에 기고한 ‘청와대 국민청원과 공론화의 딜레마’라는 칼럼에서 “너무 많은 공론화는 자칫 배를 산 위로 올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정부 당국의 책임 있는 결정을 매번 국민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논설실장은 청와대가 강조한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구에서 ‘제대로’라는 말이 빠졌다며 “국민은 제대로 묻고 정부도 제대로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