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 읽었던 김훈의 소설 <개>는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개의 시각을 흥미롭게 묘사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진돗개 ‘보리’의 심리 묘사가 마치 개가 글을 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개가 ‘개 노릇’을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개 노릇하기가 쉽지는 않아. 중요한 공부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무엇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괴롭히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
개가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지내게 된 비결은 충성심이 강하고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TV 프로그램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면 ‘문제는 사람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개는 사람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이 아닌 얼굴과 가슴이 향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은 개가 멍청하다고 타박한다.
요즘의 반려견은 마당에서 집을 지키던 과거의 ‘똥개’가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가족의 일원이다. 아픈 반려견을 치료하려고 수백만 원의 병원비를 선뜻 내놓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미친개’라는 표현은 반려견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낯선 단어로 와닿는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가 사람들이 내뱉는 폭언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라 하겠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폭언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최근 마약 유혈 소탕전과 관련한 초법적 처형 의혹을 조사할 유엔 조사단을 향해 '개XX'라고 지칭하며 “그들이 오면 악어한테 던져버려라”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의 막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그는 정치인의 비리를 파헤친 기자가 피살당한데 대해 “기자라고 해서 암살당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의 ‘미친개’ 발언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의 수사를 두고 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에 걸렸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비하하면서 양측의 공방전이 달아올랐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도랑을 흙탕물로 만든다고 한다”며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을 겨냥했다.
이에 황 청장도 “모욕감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발끈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 수사는 표적이나 의도적 수사가 아니다”라며 수사의 정당성에 힘을 실었다. 현직 경찰관들의 온라인 모임 ‘폴네티앙’도 “14만 경찰 가족이 모욕감을 넘어 참담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경찰관은 SNS에서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무학대사의 문구를 들고 나섰다.
이번 사태는 울산경찰청이 최근 김기현 시장의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불거졌다. 김 시장의 비서실장이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특정 레미콘 업체 선정을 강요한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비서실장은 “정치적 살인”이라며 경찰을 비판했다.
어쨌거나 사건의 진실은 수사를 해보면 드러날 터이다. 경찰도 ‘공작수사’라는 의심을 벗으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 스스로 ‘결백’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다만 이번 사태를 보면 한국당의 막말 수준이 안하무인을 넘어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설사 한국당의 주장대로 ‘미친개’라는 표현이 경찰 전체가 아닌 울산경찰청장 개인을 겨냥한 것이었다 해도 그렇다. 명색이 광역시 경찰 조직의 수장을 향해 할 소리는 아니다. 제아무리 국민의 대표라 하더라도 경찰 고위간부를 ‘미친개’로 비하할 권한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닐 터이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막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인권을 짓밟은 권력기관이 ‘앞장이’, ‘하수인’ 등의 오명을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하물며 지금의 대한민국은 ‘미친개’가 돌아다닐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한국당 의원들이 울산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자체가 정치적 ‘외압’으로 비칠 수 있다.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선에서 멈췄어야 했다. 수사기관을 향한 과도한 공격은 “잘 봤지? 앞으로 우리당 후보를 건드리면 재미없어”라는 엄포로도 읽힌다.
인권을 침해하는 막말은 비판이 아니라 언어폭력이다. 더구나 권력에 의한 언어폭력은 공직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나 다름없다. ‘미친개’ 프레임으로 경찰을 길들이려는 의도였다면 판단착오였던 것 같다.
중국 당나라 때 재상 풍도(馮道)는 <설시(舌詩)>에서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라고 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다. 막말로 영웅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노이즈 마케팅’을 벤치마킹하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