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린(30, 부산시 기장군) 씨는 얼마 전 집들이 기념으로 지인으로부터 소화기를 선물 받았다. 그러나 소화기를 전해 받은 이 씨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평소 그녀가 알던 빨간색의 소화기가 아니고 아기자기한 핑크색의 처음 보는 소화기였던 것. 이 씨는 차량용, 가정용 소화기처럼 작은 사이즈의 소화기가 있는 건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독특한 디자인의 소화기는 처음 접했다. 그녀는 “아직 소화기를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예쁜 디자인이라 인테리어용으로 집에 배치해 놓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소화기가 다양한 디자인과 형태로 변화하면서 화재 진압 도구와 함께 인테리어 용품으로 활용돼 일석이조의 효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4일부터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주택용 소방시설(소화기, 단독경보형감지기)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등 아파트와, 기숙사를 제외한 공동주택에서는 세대별, 층별 각각 1개 이상의 소화기를 필수로 설치해야 한다. 신축·개축 건물은 건물 신고 시 소화기를 의무 설치해야 하고, 기존에 있던 건물의 입주민들은 소화기를 별도로 구매해야한다.
이런 상황에 발맞추어, 현대 소비자들을 위한 다양한 디자인의 새로운 소화기가 등장하고 있다. 디자인 소화기라고 불리는 이 소화기는 핑크색, 파란색 등 기존의 빨간색에서 벗어난 다양한 색깔의 가지고 있고, 색상뿐만 아니라 표면에 그림도 그려져 있다. 대표적인 디자인 소화기 제작 기업 ‘마커스랩(markerslab)’은 형형색색의 컬러 디자인 소화기부터 동물, 액션 영화 히어로(영웅), 다양한 무늬 등이 그려진 그래픽 디자인 소화기 등을 선보였다. 마크스랩의 소화기 가격은 4만 9000원부터이고,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구매가 가능하다.
또 다른 기업 ‘해피밀리(HAPPYMILY)’에서는 손잡이(핸들)를 없앤 새로운 디자인의 소화기 '브알라'를 선보였다. 해피밀리 여태웅 대표는 "(브알라는) 평소 계단, 문 앞 등 실제 생활반경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소화기를 일상생활에 친근한 디자인으로 기획한 것"이라며 “브알라는 평소 소화기에 관심이 없었던 분들에게 사용용도, 성능, 관리방법 등 소화기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유도하고 소방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제고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브알라 소화기 역시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가 가능하며, 가격은 9만 9000원부터이고, 원하는 문구를 넣어 주문제작도 가능하다.
겉으로 보이는 디자인이 아니고 형태 자체가 변화된 소화기도 생겨났다. 지난 9월 삼성화재 CF에서 처음 등장한 투척식 소화기, ‘꽃병소화기(Firevase)’는 평소에는 꽃을 꽂아두는 꽃병이지만,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불이 난 곳에 꽃병을 던져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특수 소화기다. 이 소화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특별한 조작 기술 없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디자인이나 형태가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기존 소화기에서 아이디어를 더한 제품도 있다. 일명 ‘말하는 소화기’는 소화기 사용법을 모르거나 화재 상황에서 당황해 사용법을 잊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소화기에 부착된 음성안내기의 설명에 따라 화재를 진압하면 된다. 현직 소방관인 경기재난본부 홍의선, 백정열 소방관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소화기는 판매 시작 약 6개월 만에 2만 7000대가 팔렸다.
이러한 소화기의 변신에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정윤미(23, 서울시 양천구) 씨는 “예전에 계란을 삶다 깜빡해 냄비에 불이 붙은 적이 있었다”며 “급한 마음에 소화기를 들었지만 사용방법을 몰라 아찔했던 기억이 있는데, 침착히 사용법을 알려주는 안내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바로 구매했다”고 말했다. 김수연(36, 부산시 연제구) 씨 역시 “옛 소화기가 너무 커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구석에 넣어뒀다”며 “작고 가벼우면서 디자인도 예쁜 소화기를 구매해 아이도 위급할 때 쓸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거실에 놔 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소화기의 변화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타내고 있다. 소화기의 상징이자 눈에 잘 띄는 빨간색 디자인이 아닌 경우, 급박한 상황에서 누구나 알아볼 수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소화기의 색상이 법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소화기=빨간색’이란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지현(27, 부산시 중구) 씨는 “디자인 소화기를 직접 산 사람만 그게 소화기인 것을 알지, 남이 보면 텀블러로 오해할 수도 있다”며 “누구나 알아볼 수 없으면 위급상황에 쓸모가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또한 소화기의 실용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목재·섬유·유류 화재 등에 사용되는 포말소화기, 전기·화학약품 화제에 적합한 분말 소화기, 모든 화재에 사용 가능한 할론 소화기 등 용도에 따라 소화기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화재 종류에 따라 적절한 소화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폭발 등 2차 피해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소화기에 관한 설명이나 사용법보다 디자인을 중시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소방청 소방산업과 박동순 공업사무관은 “소화기는 소화약제 등에 따라 1단, 2단, 3단으로 소화 기능에 따라 분류되어있지 소화기 색상은 따로 규정되어있지 않다”며 “소화기가 다양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보급되고 눈에 띈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