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직접 수집한 소장품들로만 꽉 채워진 박물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부산커피박물관.’ 부산커피박물관이 자리 잡은 곳은 카페들이 빽빽이 줄지어 있으면서 전국적 유명세를 자랑하는 부산 서면의 전포카페거리. 문을 연 날은 올해 6월 18일이다. 평일에는 150명, 주말에는 300명씩 찾아 항상 관람객들로 박물관 안이 붐빈다. 오늘 이곳을 처음 찾은 대학생 이모(21, 경남 진주시) 씨는 “박물관 인테리어가 고급지고 예뻐서 좋다”며 “향긋한 커피 냄새와 함께 전시품들을 보니까 더 편안하게 즐겼다”고 말했다.
첫 입구 안으로 들어서면 부산커피박물관은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은 원래 북유럽풍의 식당이 들어오기로 돼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커피박물관이 들어오면서 원래 설치해 놓은 따뜻한 주황색 조명, 연두색과 흰색이 섞인 산뜻한 벽지가 그대로 박물관 인테리어가 됐다. 그래서 부산커피박물관은 박물관 같지 않은 박물관 분위기를 형성한다. 부산커피박물관 관장이며 모든 소장품의 주인인 김동규(41) 씨는 “원래 박물관은 전시품 하나하나에 시선이 가도록 흰 배경을 주로 쓴다. 그러나 그 흰색이 딱딱한 이미지를 준다. 관람객들은 물건 하나하나에 눈은 가지만 부담감 역시 가진다. 그래서 밝은 벽지와 조명을 그대로 써서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열린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물관 내부는 165㎡ 규모로 비교적 작은 크기다. 하지만 100년 이상 된 로스터기와 에스프레소 머신, 커피잔 등 알차게 전시 품목들이 구성돼 있다. 관람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커피의 역사, 변천 과정, 다양한 커피 관련 용품들이 한눈에 보인다. 그중에는 1700년대 독일에서 나무로 만든 맷돌 그라인더와, 독일의 히틀러가 당시 군인들에게 보급한 커피 그라인더도 있다. 또 몇몇 전시품들은 유리관으로 감싸여 있지 않아 직접 만져볼 수도 있고 중간마다 포토존도 있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처음 이곳을 방문한 이은숙(47, 부산시 진구) 씨는 “도심 속에 커피에 대해 알 수 있는 박물관이 있어 좋고 직접 만져볼 수도 있어서 너무 좋다. 가게 내부가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들어 또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커피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전시품들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바로 박물관 관장 김동규 씨가 하나하나 직접 모은 커피 관련 수집품들이다. 원래 조경업에 종사하던 김동규 씨는 커피도 좋아하고 골동품도 좋아해서 커피 관련 공동품 수집을 취미로 시작했다. 골동품을 하나둘씩 모으다 보니 어느덧 430점이 됐고 박물관까지 열게 됐다. 김동규 씨는 “오랜 시간 동안 나 혼자 보고 즐기던 수집품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커피박물관을 갔는데 그 박물관 입장료가 비싸 많은 사람들이 안에는 안 들어가고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가 무료로 입장하는 커피박물관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전시품 중 대부분은 중국, 독일 등을 김동규 씨가 직접 여행해서 수집하거나 경매로 어렵게 구한 것들이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을 구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았다. 김동규 씨는 “인터넷 거래나 딴 사람을 통해서 물건을 구입하다가 사기당한 적도 있었다. 그땐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피에 푹 빠져있다. 우리가 언제부터 커피를 즐기게 됐을까?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는 대한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궁궐을 빠져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을 갔다. 이를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한다. 그 1년 동안 러시아 공사관에서 생활하면서 고종은 커피를 자주 접했다. 고종은 달달하지만 씁쓸한 커피 맛의 매력에 빠졌다. 고종은 환궁 이후에도 정헌관이라는 집을 짓고 그곳에서 커피를 자주 찾았을 정도로 커피를 사랑했다. 이 역사를 바탕으로 고종이 좋아하는 커피를 이용해 고종을 독살하려는 작전을 그린 장윤현 감독의 영화 <가비>가 탄생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인 하루 평균 커피 섭취량이 1.2잔으로 세계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 덕에 부산에도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현재 전포동에는 카페거리라는 상권도 형성됐다. 이곳에 커피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부산커피박물관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커피박물관 관장 김동규 씨는 “지금도 계속 커피용품을 수집하고 있다. 앞으로 나는 이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커피와 관련된 볼거리들을 계속 바꿔줄 것이다. 많은 분들이 박물관에 오셔서 커피의 역사를 배우고 고색창연한 커피 용품들을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