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통령의 국어실력’이란 화두가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조선일보의 한 부장급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 발언 텍스트에 나타난 문법적 오류 및 문장 구성상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게 발단이었다. 누리꾼들은 칼럼을 퍼나르면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어떻게 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시나,” “청와대의 그 많은 언론 비서관들은 다들 휴가 떠나셨나” 등의 야유를 퍼부었다.
칼럼은 예리했다. 신문사 선배가 초년병 기자의 원고를 교정 보듯 문제의 발언록에 일일이 밑줄을 쳐가며 잘못을 잡아내고 이를 제대로 된 문장으로 고쳐 놓았는데, 숙련된 데스크 실력을 과시했다.
그 중 한 대목-.
"그러나 신뢰를 보내준 국민들에게 그 정치적 신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저도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 만이 남았습니다."
칼럼은 이 발언 중 “<국민들에게>는 <국민들에 대한>으로 바꾸는 게 옳고 부사어 <그렇게>는 구체적이지 않아 헷갈리기 쉽기 때문에 생략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특히 칼럼은 “<돌아온 것은 ~~공허함만 남았다>는 문장은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비문(非文)”이라고 강조했다. 칼럼은 이를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 만 남았습니다>, 혹은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 뿐이었습니다>로 고치는게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이 칼럼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별거 아닌 일이라며 허허 웃고 넘겼을지, 뼈아픈 통증을 느꼈을지 미지수다. 어쩌면 평소 우군이라 생각해온 조선일보가, 남들보다 앞장서서 이처럼 지엽적인(?) 국어 문법 문제를 갖고 자신을 비판한 사실에 또 다른 ‘배신감’을 가졌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그 칼럼을 쓴 필자는 몇 년전 대선을 앞두고 당시 TV 조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대담하던 도중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 빛이 난다”면서 박 후보를 치켜세워줬던 ‘형광등 아우라’ 발언의 장본인이다.
사실 박근혜 대툥령의 국어실력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대통령이 되고 나서 원고 없는 즉흥 발언을 할 때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비문을 많이 구사해 네티즌들로부터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조롱을 받아왔다.
예컨대 지난 5월 12일 박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는 “다같이 정신을 차리고 힘을 모아 올해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자”고 촉구하는 뜻인듯 한데,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말이 잘 안된다. 아무리 머리좋은 국무위원들이라도 제대로 집중하고 듣지 않으면 대통령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2014년 12월 17일 ‘경북창조경제 혁신센터’ 출범식 참석 뒤 관계자들과 오찬 도중 한 발언을 예로 들어보자.
“살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고 그렇지만, 사람은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는 열정이 어디에서 생기느냐면 이런 보람 ‘나라가, 지역이 발전해가는 한 걸음을 내딛었구나’ 그런데서 어떤 일이 있어도 참 기쁘게 힘을 갖고 나아가는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만일 언론사에서 후배 기자가 이런 문장의 글을 송고해왔다고 할 때 웬만한 데스크는 화를 벌컥 냈을 것이다. “야, 이게 기사냐?” 하며 질책부터 퍼부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글을 찬찬히 읽어 그 내용을 파악한 뒤 묵묵하게 고쳐 편집부에 넘기는 데스크라면 그는 참을성 많은 자상한 선배임에 틀림없다. 그런 데스크라는 가정하에 대통령의 발언을 감히 고쳐본다면, “살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어렵다고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나라가 발전하고 지역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힘들고 어려워져도 더욱 기뻐 할 수 있는 힘과 보람을 느끼셔야 합니다. 그러면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생겨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한 네티즌은 페이스북에 <박근혜 번역기>라는 풍자 코너를 개설했다. ‘대한민국 최고 존엄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번역해드리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페이지입니다’라는 해설과 함께 박대통령의 몇몇 ‘유체이탈적’ 발언을 자기 나름대로 ‘번역’해서 올렸다. 이 코너는 개설하자마자 클릭 수가 순식간에 몇만 건을 돌파하는 등 네티즌들의 주목을 끌었다. 개설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재미로 만들었다”면서 “’번역’은 박대통령의 발언 중 키워드들을 인수분해해서 유추하는 방식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코너는 개설된 지 며칠만에 폐쇄됐다. 개설자는 “압박을 받지 않았다”고 했지만 암묵적 압박이 가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짐작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라고 완벽한 국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더욱이 말은 글과 달라서 하다보면 문장의 주술(主述)관계가 더러 어긋나기도 하고 불필요한 췌사(贅辭)가 들어가기도 한다. 아무리 달변가라 해도 문법적 오류 정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일본 대사관 방명록에 ‘애도한다’를 ‘애도를 드린다’로 표기하는 등 엉터리 말과 글을 쏟아낸 이명박 전 대통령에 비하면 박 대통령의 국어실력은 양반이다. 박 대통령의 화법은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유체이탈이란 조롱을 받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이해 범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머리 속에 담겨있던 단어들이 헝클어진 상태로 입밖에 나와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보면 메시지 전달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정작 문제는 정제되지 않은 어휘 구사다. 박대통령의 연설문이나 발언 속에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쉽게 와 닫지 않는 관념어가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때때로 감정적인 단어가 순화되지 않은채 그대로 노출되곤 한다.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문법 오류의 지적을 받은 6월 25일 국무회의 발언에서도 그런 점이 눈에 띈다. ‘돌아온 것은 공허함만이 남았다’고 했는데 울분과 환멸감이 찐하게 묻어나오는, 심상치 않는 말이다. 특히 그날 발언의 핵심 키워드인 ‘배신의 정치’는 그 정치적 함의(含意)가 무엇이든 간에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너무 거칠다는 느낌이다. 쌈박질로 날을 새는 일반 국회의원이면 또 모를까, 온 국민을 위무하면서 나라를 이끌고 나가야 할 최고 지도자가 구사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 날선 창 끝의 표적은 분명했다. 자신의 노선에 반대해온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솎아내고 여권내 저항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일 것이다. 그 이후 정국을 보면 박대통령의 의중 대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고 그런 점에서 그 발언은 일단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지금 눈앞의 국면은 박 대통령이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른다. 내년 총선에 박 대통령의 구상대로 충성스런 정치인들이 대거 공천을 받고 당선되어 임기 마지막을 받쳐줄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지금은 바짝 엎드린 여권내 반대 세력이 언제까지나 그런 포즈를 취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박 대통령의 약점이 노정되면 금방 들고 일어날 확률이 크다. 충성파들 역시 모종의 모멘텀만 생기면 등을 돌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장면에서 박 대통령은 다시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국민들 앞에서 울분과 환멸감을 토로해야 할 것인가. 국정을 정치공학적 접근방식으로 운영해서 성공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통해 찾기 힘들다.
공자 말씀에 ‘안정사(安定辭) 안민재(安民哉)’라는 게 있다. “말은 안정되고 일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곡례에 나오는 대목으로 유가(儒家)의 첫번째 행동강령이다, 언사를 잘 하는 것이 군자에게 요구되는 최우선 덕목임을 지적한 것이다. 일반 군자에게 그럴진대 최고의 군자라 할 수 있는 나랏님에게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은 정제되고, 격조 높고, 품이 넉넉한 말을 구사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과 함께 ‘국민 누나’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 덕을 입어 대권을 잡았다. 그런 박 대통령 입에서 모질고 거친, 듣기에 불편한 말이 쏟아진다면 국민들 역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