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로 수요일마다 '정해영의 법률산책'을 연재한다. 필자인 정해영 변호사는 서울의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바른의 파트너 변호사이다. 경영학 박사로서 동아대 로스쿨 겸임교수, 부산지법 파산관재인, 국세심사위원, 캠코 고문, 해양진흥공사 투자심의위원, 예보 파산재단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재판’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2011년 5월경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루어진 재판으로,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필자는 당시 부산지방변호사회의 추천을 받아 인권의 측면에 초점을 맞춰 해적들을 변호했다.
-사건 개요
소말리아 해적들은 한국선원들이 타고 있던 ‘삼호주얼리호’를 탈취한 뒤, 선박 안에 있던 재물을 가로채고 한국선원들을 인질로 잡았다. 그러면서 인질 석방의 대가 등을 요구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즉각 해군 청해부대를 투입해 한국선원들에 대한 구출 작전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이 해적들이 쏜 총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청해부대는 석 선장을 쏜 마호메드 아라이를 포함한 소말리아 해적 5명을 체포한 뒤 9일 만에 ‘대한민국 부산’으로 압송해왔다.
이 때문에 이 재판은 ‘대한민국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루어지게 됐는데, 사건의 성격상 쟁점 사항이 여럿 있었다.
형식적인 문제만 하더라도 ▲부산지방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게 타당한지의 문제 ▲소말리아 언어의 통, 번역 문제 ▲5일간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의 문제 ▲피고인 5명에게 각각의 국선변호인을 두는 문제 ▲일반재판과 국민참여재판의 분리 문제 등 전례가 없는 것들이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법원, 검찰, 변호인, 배심원단 등의 노력으로 재판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지난 2011년 5월 27일 부산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8일 부산고등법원의 2심 판결이 나온 데 이어, 12월 22일 대법원의 선고를 끝으로 해적재판은 종결되었다.
-재판의 쟁점
앞에서도 말했듯이 해적재판은 쟁점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필자가 변호인으로서 주장한 ‘소말리아 해적재판을 대한민국 부산에서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공해상에서 해적 행위를 하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강제로 데려와 부산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 게 가능한 것인지, 이송절차를 정한 법률은 있는 것인지,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해적들을 국내로 이송하여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가 한국선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였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의 형법 등에 의해 처벌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국 법원 특히 부산지방법원에 ‘관할권’이 있는지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관할권이란, 예컨대, 미국에서 미국 시민이 한국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였다면, 가해자가 미국의 형법에 따라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미국 시민을 체포하여 한국으로 압송한 후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따져볼 문제이다.
우리의 형사소송법을 살펴보면, 제4조 제1항은 ‘토지관할은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은 ‘국외에 있는 대한민국 선박 내에서 범한 범죄에 관하여는 전항에 규정한 곳 외에 선적지 또는 범죄 후의 선착지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를 감안했을 때 범죄가 발생한 곳은 공해상의 삼호주얼리호인데, 삼호주얼리호의 선적지는 몰타국이고, 소유자는 ‘노르웨이국 지에스에이치’이므로, 삼호주얼리호는 대한민국 선박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해적들인 피고인들을 부산지방법원에서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지’ 관할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현재지’란 공소 제기 당시 피고인이 있는 장소를 말한다. 문제는 피고인이 자의로 대한민국 부산에 들어온 경우, ‘현재지’ 관할이 부산 소재 법원에게 있지만, 피고인을 위법하게 부산으로 압송하여 온 경우라면 관할권을 발생시키는 ‘현재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통설이라는 데 있었다.
당시 해적들 중 압디하더 아만 알리의 변호인이었던 필자는 피고인들을 강제로 압송한 것 자체가 헌법상의 ‘적법절차’ 등을 위반한 위헌이고 또한 위법한 강제에 의한 것이므로, 부산지방법원의 ‘관할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을 하였다.
반면에 검찰은, ‘유엔해양법협약 제105조에 의하면 모든 국가는 해적 지배하의 선박에 있는 사람을 체포할 권한이 있고, 해군에 의한 공해상에서의 해적 체포 행위는 형사소송법상 사인(일반 개인)의 현행범인 체포로 볼 수 있으므로 영장주의의 예외이다’라는 취지로 반박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토지관할권의 근거인 형사소송법 제4조 제1항에 의하면, 위법한 강제에 의한 현재지는 포함되지 않지만, 국제연합 협약 제105조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하여 해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체포하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피고인들을 체포한 군인들의 행위는 사인에 의한 현행범체포에 해당하여, 결국 피고인들은 적법한 체포, 즉시 인도,적법한 구속으로 현재 부산구치소에 구금되어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에 관하여 이 법원에 토지관할이 있다’는 취지로 판결을 하였다.
어쨌든 법원의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생명과 신체에 해를 입히는 해적들에 대하여서는 강제 송환을 하여 한국에서 재판을 할 수 있는 전례가 생겼다.
한편, 해적재판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드문 일인데, 부산지방법원에서 무리 없이 이루어진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소말리아 해역에서의 국군부대 활동에 관한 특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소말리아 해역에서 우리나라 군인이 해적들을 체포하더라도, 그 과정에 있어서의 절차 및 체포 이후의 절차에 대한 근거 법률은 여전히 없는 실정이다. 적법절차원칙 위배라는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존재하므로 이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한다.
-후일담
법원의 유죄 판결 선고 및 확정 이후, 피고인들은 외국인 전용 교도소인 천안 교도소 및 대전 교도소에 분리 수용되어 형의 집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필자는 변호인 접견을 할 당시 피고인들로부터 “대한민국이 너무 좋다. 구치소도 좋고,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 받는 것도 너무 행복하다. 평생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고, 가족들도 이곳으로 데려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피고인들은 문맹의 상태에서 처음으로 ‘한글’이라는 언어를 익히고, 구치소에서 처음으로 기본적인 생존요소인 의식주를 접하고는 너무나 행복해했다.
이런 류의 피고인들에게 징역형의 집행이 어떠한 형벌의 효과가 있는지가 늘 의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