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
A 씨가 차를 몰다 길고양이를 치었다. 그는 길고양이를 즉시 동물병원에 데려가 초기 수술비 약 410만 원을 부담하면서 치료를 했다. 그 뒤로도 상당한 비용을 들여 길고양이를 돌보았다.
이 사실을 안 필자는 A 씨를 대리하여, 보험회사를 상대로, 수술비 등에 대한 보험금 청구 사건을 진행했다. 공익소송이었다.
당시에는 차량 밑에서 쉬고 있던 길고양이들이 차에 치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길고양이의 지위에 대한 법적 판단 및 사회적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길고양이를 주인이 없는 버려진 가구 정도로 이해하는 게 타당한 것인지, 길고양이를 차로 친 경우, 수술비용이 수백만 원 드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무료로 ‘길고양이 소송’을 진행하게 됐던 것이다.
현행법상의 한계와 쟁점
이 소송은 쉽지 않았다. 현행법상의 한계 탓이었다.
먼저 길고양이의 ‘법적 지위’ 문제. 길고양이의 법적 지위가 정립되어야 길고양이가 어떠한 법적 권리 및 의무를 가지는지가 정해지고, 일반 국민들의 길고양이에 대한 권리 내지 의무도 구체화된다.
일반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민법 등 일반법을 통해 보장된다. 예컨대, 헌법 제23조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고, 민법 제213조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재산권의 종류와 범위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 어디에도 길고양이와 같은 동물에 대한 권리 혹은 의무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동물의 헌법상 권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길고양이의 권리는 일반 국민의 헌법상의 권리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주인(소유자)이 있는 동물에 대한 권리는 현행 헌법 제23조 재산권에서 찾을 수 있다.
요컨대, 동물의 주인은 소유자이므로 소유자는 그 동물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동물을 다치게 하면, 동물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한 게 되고, 동물 주인은 가해자에 대하여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형사상으로는 동물 주인의 재산을 손괴하였으므로, 가해자를 상대로 재물손괴죄로 고소할 수 있다.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의 범위는 일반 물건에 대한 손해배상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가치(시가)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치료비가 아무리 많이 나오더라도, 그 동물의 가치(판매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말이다.
주인이 있는 집고양이는, 위와 같이 주인의 재산권행사로 어느 정도 보호를 받는데, 길고양이처럼 주인이나 소유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법적 권리와 의무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법적 보호도 어렵다. 즉, 현행법상 길고양이를 다치게 한 가해자에 대하여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거나 형사상 재물손괴죄로 고소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길고양이가 법적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면,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것인가? 물건 중에서도 어떤 종류의 물건인가? 가로수 정도의 물건인가? 길가의 돌멩이 정도의 물건인가?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길고양이가 주인이 없는 물건에 해당한다면, 길고양이를 다치게 한 가해자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형사상 재물손괴죄 등으로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차량을 운전하다 가로수를 들이받은 경우, 가로수는 주로 지방자치단체의 소유이기 때문에 운전자는 지방자치단체에게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고 재물손괴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과실이라면 재물손괴죄로 처벌받는 것은 면하겠지만 민사 손해배상 책임은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면 길고양이는 가로수 혹은 공작물보다 무가치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셋째, 길고양이를 다치게 한 경우(혹은 법적으로 손상을 가한 경우), 가해자는 치료를 할 법적 의무가 있는가? 있다면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여야 하는가? 법적 의무가 없다면 그대로 방치했다가 사망(효용성을 모두 없애서 폐기)에 이르게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사실 동물보호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아무런 법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의 내지 고의로 길고양이를 해친 경우에도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동물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한 경우에 대한 처벌근거는 생겼으나, 여전히 실수로 길고양이를 해친 경우에 대한 처벌규정 및 민사적인 손해배상책임 의무는 도입되지 않았다. 결국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는 주인이 없는 ‘물건’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수로 다치게 한 경우, 어떠한 형사처벌도 받지 않고, 민사상의 책임도 지지 않게 돼 있다.
공익소송의 의의 및 판결에 대한 아쉬움
이 사건 소송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현행법상으로는 길고양이에 대한 아무런 법적 권리와 의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차에 치어 수술이 필요한 길고양이에 대한 치료비는 보험회사 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할 수 있는 법원의 판결이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즉, 일반적으로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한 자동차 운전자가 ‘타인의 재산’을 망가뜨렸을 때 ‘법적인 손해배상’을 대신 부담한다. 그러므로 자동차 운전자가 길고양이를 치어 수술비 및 치료비 500만 원가량을 지출하였다면 그 비용도 보험회사가 떠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 소송의 취지였다.
하지만 1, 2, 3심 법원의 판단은 길고양이는 타인의 재산이 아니고, 운전자가 길고양이를 치었다 하더라도 운전자가 길고양이를 치료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앞으로 동일한 사건이 발생하였을 경우, 가해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판결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길고양이 등의 ‘법적 지위’를 위한 입법 서둘러야
사정이 이런 까닭에, 길고양이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한 입법밖에는 답이 없는 실정이다.
입법을 하면 어떤 식의 입법이 필요할까? 독일의 헌법 및 민법 개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헌법(기본법) 제20a조는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으로서, 헌법 질서의 범위에서 입법을 통하여 그리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정과 사법을 통하여 자연적 거주지와 동물을 보호한다"는 조항을 통해 국가의 동물 보호 의무를 규정했다.
이 헌법에 따라 민법도 개정되었다. 독일 민법 제90a조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였고, 특별한 법률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독일 민법 제251조 제2항은 "피해 입은 동물을 치료하는 비용이 동물의 가액을 현저히 상회한다는 것만으로 그 비용 지출이 과도한 것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다.
한시바삐, 길고양이를 비롯한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아가 관련법이 신설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