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학생들이 캠퍼스를 오간다.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 그늘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 포즈를 취한다. 가을이면 대학 캠퍼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풍경이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학과 단위로 모여 졸업앨범에 들어갈 단체사진을 찍는 것이다. 필자와 같은 대학교수들도 단체사진에 동참한다. 교수들에겐 여러 감회가 스치는 순간이다. 평소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던 학생들이 이 날 만큼은 정장을 빼입고 제법 의젓한 모습이다. 남학생들은 익숙하지 않은 넥타이를 매고서 어색함을 떨치려 애를 쓴다. 여학생들 사이에는 소위 유관순 스타일이라는 흰 재킷과 검은 원피스의 조합이 대세다. 훌쩍 성장한 학생들을 보노라면 그들의 신입생 시절이 겹쳐온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이제 사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듯 성숙해진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졸업앨범 촬영일의 풍경이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함께 모여 단체사진을 찍는 학생들의 숫자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필자가 소속된 학과의 내년 졸업예정자는 약 50명이다. 급기야 올해는 단 5명만이 단체사진 촬영에 참석했다. 함께 참석한 교수가 5명이었다. 교수와 학생 수가 같았다. 학생이 한 명이라도 덜 참석했으면 교수가 학생보다 많은 희한한 사진이 연출될 뻔했다. 그래도 학생들과 여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함께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위로 번져오는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대학의 졸업앨범도 조만간 그런 신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지금 졸업앨범을 촬영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자녀들이 성장해서 부모의 대학 졸업앨범을 구경하는 시절이 되면, 졸업앨범이란 이미 사라진 옛 전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런 것도 있었냐며 신기해할 것이 뻔하다. 아니, 지금의 추세라면 그보다 훨씬 더 빨리 대학의 졸업앨범은 추억의 유물이 될 듯하다. 카메라의 기술이 디지털화되기는 했지만, 졸업앨범은 아날로그 시대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유물임에 분명하다.
학생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면서 들었던 그 씁쓸함과 안타까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졸업앨범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 그 자체에 대한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 사라짐의 속도에 일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생각이 미친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생들에게 졸업앨범은 어떤 의미일 것인가, 대다수의 학생들이 졸업앨범 촬영에 무관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2015년의 한국 사회에서 대학졸업이 주는 사회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졸업과 함께 소위 ‘취업 준비생’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 4년이라는 황금 같은 시기를 지나온 그들 앞에 예비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참담함이다. 기대가 아니라 좌절이다. 다음 단계로 전진할 수 있다는 희망과 의욕이 그들에겐 없다. 어쩌면 졸업앨범은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매개체일 뿐이다.
하긴 대학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졸업앨범 뿐만이 아니다. 사은회(謝恩會)는 더 빨리 족적을 감추어가고 있거나 이미 사라졌다. 대학 신입생들이나 저학년 학생들은 사은회가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사은회는 “졸업생이나 동창생들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 사은회 때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린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일 것이다.
사은회가 있을 때마다 교수는 들뜨게 된다. 학점이 얼마 남지 않아 학교에 자주 오지 않는 4학년 학생들을 그날만큼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은회는 교수로 하여금 교육자로서 자신의 삶을 여러 가지로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된다. 떠나가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상에 젖는다. 내가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던가. 나는 저 학생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될 것인가. 무거운 반성이자 다짐의 자리가 된다.
어떤 대학의 사은회는 학생들의 주머니에 엄청난 부담을 주어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때도 있었다. 사실 그런 사은회는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하지만 필자가 소속된 학과의 사은회는 그야말로 조촐했다. 그것이 훨씬 좋았다. 학교 앞 중국음식점에서 함께 짬뽕을 먹은 해도 있었고, 학교 주변 시장의 허름한 식당에서 복국을 먹은 해도 있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았다. 아니, 화려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그저 졸업생들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그들의 앞길에 덕담을 건네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사은회마저 사라졌다.
소속 학과에서 처음으로 사은회가 열리지 않던 해, 개인적으론 안타까움이 몹시 컸다. 대학 4년 동안 함께 부대끼던 교수와 학생이 감사와 격려를 나눌 자리마저 사라졌다는 것이 슬프기까지 했다. 대학 4년의 가르침이 그렇게 하찮고 허무한 것인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꼰대’의 안타까움일 뿐이었다. 학생들이 기껏 짬뽕이나 복국 한 그릇의 금액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자리에 올 수 없는 ‘3포 세대’의 뻘쭐함은 ‘꼰대’의 안타까움보다 컸을지도 모른다.
필자의 학과에서 사라졌던 사은회는 최근 다른 형태로 살아났다. 학과 교수들이 졸업생들에게 밥 한 끼를 먹여서 보내는 자리를 갖는다. 비용은 학생들이 지불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저 와서 맛있게 한 끼 먹고 가면 된다. 사은회는 아니다. 굳이 이름을 짓자면 졸업생 송별회쯤 되겠다. 이름은 뭐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런 자리마저 버거워하는 학생들이 있다. 안타까울 뿐이다.
졸업앨범과 사은회. 사라져가는 것들은 사라지면 된다. 단지 그 속에 숨 쉬던 아날로그적인 감성들도 함께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젊은이들을 나무랄 수 없다. 나무라서도 안 된다. 그들은 그런 감성의 가치들을 고민하고 되새겨볼 기력마저 없다. 어쩌면 2015년의 ‘불지옥반도’에서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힘에 부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졸업과 함께 ‘미생’의 길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일단은 살아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