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현정(24, 부산시 사상구 주례 1동) 씨는 최근 지인에게 선물할 향수를 고르러 향수 매장에 들렀다. 각종 블로그나 SNS에 ‘20대 여자에게 인기 많은 향수’ 리스트에 이름이 올려져 있는 유명 브랜드 향수 제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유명 브랜드 향수 제품들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맡은 수 있는 향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김 씨는 “남들이 흔히 쓰는 향수가 아닌 진짜 한 사람만의 향수를 만드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인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직접 만들기로 했고, 수소문 끝에 집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향료로 향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김 씨는 선물할 지인의 이미지와 맞는 달콤하지만 끝 내음이 도도한 향수를 만들게 됐다.
“향수는 그 사람의 영혼이다”라는 헐리우드 영화 <향수>의 명대사와 같이 시중에서 살 수 있는 향수가 아니라 자신만의 향수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아현(23, 서울시 노원구) 씨는 한 쇼핑몰에서 향수를 만들 수 있는 향료를 파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판매업체 쇼핑몰에서는 유명 브랜드 향수 제품에 들어가는 여러 향료 세트부터 자신이 향료를 직접 선택해 만들 수 있는 DIY 세트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이 씨는 “향수에 관해 이것저것 검색해보다 알게 되었다”며 “소이 캔들이나 디퓨저처럼 향수도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것에 신기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집에서 어떻게 향수를 만들 수 있을까? 방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향수 DIY 세트를 구매하게 되면 향수 베이스, 퍼퓸 글라스, 일회용 스포이트가 포장되어있다. 향료에 해당하는 프래그런스 오일은 별도 구매다. 프래그런스 오일이란, 전문 조향사가 합성향료와 천연 오일을 조합하여 만든 향이다. 향수 베이스에 향료를 정해진 비율로 넣고 흔들어 준다. 보통 부향률을 정해져 있지만 개인의 기호에 따라 15%~30%까지 조절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든 향수를 저온으로 2주에서 3주간 숙성해주면 된다. 냉장보관으로 저온 숙성하는 이유는 향수의 향이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향을 느끼기 위해서다.
이렇게 향수 만들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되자, 오프라인 곳곳에서 향수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수업이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조향사 일일 체험으로 향수를 만드는 과정과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조향이란 향료들을 적절하게 섞어서 향을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조향사란 향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향수 제작자다. 체험하는 사람들은 스멜링 노트(향조)에 자신이 무작위로 고른 향료의 이름을 적고 그 향료에서 나는 향에 대한 표현을 자세히 적는다. 기호에 맞게 세 가지 정도의 향료를 고른 다음, 스포이트로 계량해 원하는 비율로 섞으면 된다. 이때 비율에도 정확한 수치를 측정해서 만들어야 하므로 어떤 향을 어떻게, 얼마만큼 배합해야 하는지 계산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만든 향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배합으로 만든 자신만의 향수가 된다.
향수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향료의 비율 배합이 중요한 데는 시간에 따른 발향 단계 순서로 향료를 조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향을 사용한 후 처음부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껴지는 향취를 탑, 미들, 라스트 노트로 구분해서 라스트, 미들, 탑 노트 순으로 조향한다. 탑 노트는 향의 첫 느낌으로 향을 개봉했을 때 레몬, 오렌지처럼 휘발성이 강한 향이 주로 탑 노트에 속한다. 미들 노트는 향의 중간 단계로 시간상으로 향을 뿌린 후 20분에서 1시간 정도 경과되었을 때 느끼는 향으로. 주로 장미, 백합 등 플로랄 향이 있다. 향기의 잔향이라고 할 수 있는 향수의 베이스, 라스트 노트는 향을 뿌린 후 3시간 이후에 느낄 수 있는 향이다. 주로 머스크 같은 동물성 향료가 여기에 속해 있으며, 이런 라스트 노트는 향수의 기본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탑, 미들, 라스트 노트가 잘 조화된 향일수록 더 좋은 향수가 된다.
남편과 함께 조향사 체험을 한 직장인 성지영(33, 경남 창원시 성산구) 씨는 온전히 자신만의 향을 만들게 되어 기쁘다. 성 씨는 남편에게 맞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사향노루의 사향선을 건조해서 얻은 머스크 향을 라스트 노트로, 감귤 향처럼 상쾌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그린 티 향료를 탑 노트로 선택했다. 성 씨는 “향이라는 게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낄 수 없다. 머스크 향은 나에게는 남자 스킨 향처럼 코에 톡 쏘는 알코올 향 같이 느껴진다. 남편이 쓰는 스킨과 어우러져서 향수가 이질적이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자신이 그 향료들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성 씨는 “일반적으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흔하게 맡을 수 있는 향수가 아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향수를 만들게 되어 놀랍다”며 뿌듯해 했다.
헐리우드 영화 <향수>에서 주인공은 최고의 고혹적인 향기를 찾기 위해 젊은 여성들을 죽인 뒤 그 생체의 냄새를 뽑아내는 엽기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만든 향기로 사람들의 혼을 매료시켜 결국 자신을 위험에서 스스로 구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 내용은 픽션이지만, 인간관계에서 향기가 가지는 위력은 첫 인상만큼 크다. 그만큼 자신만의 향기로 개성적인 향수를 갖고 싶다는 사람들이 느는 이유다. 부산에서 향수 만들기 체험 수업을 하는 박형미(26) 씨는 엄마와 딸, 커플 등 여러 사람들이 이색 체험으로서 향수 만들기 일일 수강을 한다. 박 씨는 “요즘 같은 개성시대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개별 맞춤형 향수를 만들기 위해 향수 만들기 수업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하다”며 “요즘 사람들은 무턱대고 유행을 따르는 대신 향수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