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선도를 하면 병이 낫는가
나는 왜 국선도를 하면 병이 치유되는지 궁금했다. 내 자신이 수차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효과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되는지는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동안 나 자신의 체험과 수십 년간의 수련경험 등을 토대로 나름 분석한 결론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국선도의 모든 동작은 철저하게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있다. 사람 뱃속에 있는 다섯 가지 내장을 오장이라 하는데 간장(肝臟), 심장(心臟), 비장(脾臟), 폐장(肺臟), 신장(腎臟)을 가리킨다.
육부는 뱃속에 있는 여섯 가지 기관으로 담(膽), 위(胃), 대장(大腸), 소장(小腸), 삼초(三焦), 방광(膀胱)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국선도 동작의 430개 동작이 오장육부와 세밀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에 동작을 되풀이하면 오장육부가 저절로 강화된다. 오장육부가 좋아지면 당연히 모든 병이 물러가게 되어 있다.
사실상 이것이 국선도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떠한 동작이 어떤 장부에 효과를 주는지 우리의 조상들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인체가 어떻게 구성되고 활동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그러한 동작들은 결코 만들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국선도를 창시한 분들이 엄청난 고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수도 아닌 사람이 동작의 순서를 바꾸거나 자기 나름대로 수정을 하면 효과도 떨어지고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부작용 없는 호흡원리다. 세상의 모든 수련법은 호흡법과 관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호흡을 이용하는 방법이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호흡법이 효과는 크지만 부작용도 크다는 것이다.
호흡은 대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율신경에 해당한다. 즉, 심장과 호흡, 소화, 눈물 등은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기능이다. 그런데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기능에 의식을 가해 통제하기 시작하면 자율신경이 깨지게 된다.
나는 20대 중반에 조금만 수련하면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의 책을 보고 따라하다 호흡곤란증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다. 나는 그러한 병에 걸렸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젊은 놈이 왜 그렇게 한숨을 많이 쉬냐며 나무라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거의 3분에 한 번꼴로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숨을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평소 때 활동을 하면서 숨을 쉬지 않았던 것이다. 숨을 쉬지 않으니 산소가 부족해 숨이 가빠오고 숨이 가빠오니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고 나면 잠깐 의식적인 숨을 쉬다 잠시 뒤 또 나는 숨을 쉬지 않았다.
공중부양을 한답시고 억지로 호흡의 길이를 늘이는 바람에 그만 호흡과 관련된 자율신경이 깨져버린 것이다. 자율신경이 회복되기까지 거의 2년이나 걸렸다. 자칫하면 잠을 자다 무호흡으로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선도는 특별한 호흡방법으로 서서히 호흡시간을 늘여 가기 때문에 부작용이 전혀 없다. 또 오장육부가 건강해지면 호흡의 길이는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호흡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기(氣)의 흡입이 더 많아지게 된다.
기의 흡입이 많아지면 오장육부는 더 강화되고 호흡의 길이는 더욱 길어진다. 나중에 오장육부에 기운이 꽉 차고 모든 인체에 기운이 가득 차게 되면 마지막에 호흡이 끊어지게 된다. 호흡이 끊어지면 심장도 멈추게 되는데 최고의 경지다.
수련은 궁극에 가면 똑같아진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호흡과 심장이 멈추는 것은 바바지가 전수한 크리야요가의 핵심이다. 그래서 수련은 궁극에 가면 똑같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바 우리의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고, 불교에서도 완벽한 선정에 들면 심폐기능이 정지한다.
중국의 선도(仙道)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길은 많지만 에베레스트에서 보는 풍경은 똑같아야 한다. 다르다면 그 사람은 최고봉에 오른 것이 아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어떤 분들, 특히 국선도를 수련하는 분들은, 역시 국선도를 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자부심을 키우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문제는 국선도를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지도는 1/3밖에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발 3천미터를 100번 오르내린다고 8848미터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는 없는 것처럼, 국선도의 정각도 단계를 아무리 오래 닦는다고 하더라도 진기단법 이상의 수련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국선도를 하는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면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의 힘도 강해지기 때문에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수 있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10년 또는 어떤 사람은 30년 이상 똑같은 단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 중에 진기단법의 단계를 완성했다는 사람을 아직 듣지 못했다.
왜 그럴까? 앞에서 얘기했듯이 국선도 수련을 통해 오장육부가 건강해지면 차츰 호흡이 끊어지고 심장이 멈추며 도(道)가 완성되는 과정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대략의 과정에 대한 설명이고 실제의 과정에는 익혀야 하는 많은 단계와 넘어야 하는 관문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의 경우를 보자. 나는 병원에서 약으로 치료가 안 된다는 말에 국선도에 집중했다. 오장육부가 튼튼해지자 병은 자연스레 치유되었다. 오장육부에 기운이 가득 차게 되자 남은 기운들이 단전에 축적이 되기 시작했다.
단전에 축적된 기운이 한계에 이르자 이 기운이 탈출할 구멍을 찾게 되었고 3일 동안 꼬리뼈를 망치로 때리는 것처럼 두드려대더니 마침내 척추를 타고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과정은 국선도 책에 언급되어 있다. 책에는 세 번의 진동이 크게 온다고 되어 있다. 약간 다르지만 뭐 비슷하니까 그렇다 치자.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책에는 이 다음부터 수련자가 어떠한 과정을 겪게 되는지, 또 고비에서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되는지, 무엇을 먹어야 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되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 그냥 이때부터는 임독맥을 따라 기운이 흘러가게 되며, 이때는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므로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뭐 이런 정도다.
이 정도의 설명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동쪽 방향으로 계속 가면 언젠가는 작은 바늘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똑같다. 대낮에 상세한 지도를 주고 정확한 설명을 들어도 숲 속에서 바늘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털끝만큼만 틀려도 빗나간다고 하는 게 바로 이 과정이다. 그런데 그냥 될 리가 있겠는가. 청산선사께서도 진기단법부터는 10%만 공개하고 90%를 숨겼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90%를 우습게 생각한다. 털끝만큼만 틀려도 빗나가는데 90%를 모른다면 절대 불가능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나타나는 현상을 갖고 물어보면 그들은 책에 나와 있는 대로만 대답했다. 책에 나와 있지 않은 현상을 물어보면 그들은 뭔가 내가 잡념이 많거나 호흡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더 호흡에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대부분 그렇게 충고했다.
그런데 호흡에 집중하면 할수록 이상한 현상은 더 강해졌다. 모른다면 모른다고 해야 하는데 모른다고 하면 자신의 실력이 낮다는 게 들통 나니까 아는 척 하며 오히려 네가 잘못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길을 잃고 헤매야 했다.
다행히 몇몇 솔직한 분들은 모른다고 했다. 모른다고? 아,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간단하다. 다른 곳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때 내 머리에 크리야요가가 떠올랐다. 20년 전에 히말라야의 살아있는 신의 화신 바바지에게 한 기도가 이 대목에서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이다.
나는 20년 전에 요가를 배우러 갔다가 국선도를 배웠고 국선도를 배운지 20년 만에 다시 요가를 배우러 가게 되었다. 참으로 희한한 인연 아닌가. 그때는 돌아볼 틈이 없었는데 요가를 배운지 10여 년이 넘었을 때 비로소 앞으로 해야 할 나의 역할이 보이기 시작했고 35년 전 국선도와 요가의 엇갈림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일, 하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