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하면 떠오르는 말은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이다. 자신감과 열정이 뭉쳐진 말이다. 나약한 청년들에게, 길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이들에게, 그들의 정수리에 붓고 싶은 말이다.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황야의 사자’라는 뜻이다. 그는 이름 그대로 평생을 외로움과 투지로 인생을 개척하면서 많은 전쟁에서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 승리와 패배, 영광과 몰락을 겪었지만 오늘날 프랑스 자존심의 중심에는 나폴레옹이 있다.
나폴레옹이 남긴 명언은 오늘날 전 세계인에게 큰 힘이 된다.
▶나의 실패와 몰락에 대하여 책망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나 자신의 최대의 적이며, 비참한 운명의 원인이었다.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 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사회에는 칼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의 힘밖에 없다. 그런데 결국은 칼이 정신에게 패배당하고 만다.
▶산다는 것은 곧 고통을 치른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이기려고 애를 쓰는 법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성공했다고 기쁨에 도취되지 않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는 인내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인내하는 데서 운명이 좌우되고, 성공이 따르게 된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책을 읽은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1769년 지중해의 작은 섬 코르시카의 아작시오에서 태어났다. 그는 8남매의 둘째로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집안은 이탈리아의 소지주였다. 코르시카는 기원전에는 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후에 로마 공화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뒤로 비잔틴 제국, 아랍, 롬바르드, 제노바 공화국으로 그 주인이 바뀌었다.
1768년 코르시카의 독립운동을 귀찮게 여긴 이탈리아(제노바)가 프랑스에 팔아버렸다. 나폴레옹의 출신은 촌놈 중 상촌놈이었다.
나폴레옹은 아홉 살 때 프랑스로 건너가 왕립 브리엔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동급생들의 놀림이 심했다. 키는 작고, 매우 말랐으며, 프랑스 말도 제대로 못했다. 왕따의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15세에 파리의 사관학교에 입학한 나폴레옹은 여전히 고독했다. 그래서 책을 친구로 삼았다. 어린 나폴레옹에게 독서는 피난처이자 안식처였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이 당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의 종합 위인전이다. 어린 시절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는 결국 영웅이 되었다.
나폴레옹의 독서 취향은 장군이 된 후 전쟁터에서도 여전했다. 나폴레옹은 수레에 가득 책을 싣고 군 막사에 서가를 마련해 책을 읽었다. 29세의 나이로 이집트 원정군 사령관이 된 그는, 3만 8000여명의 원정군을 조직했다. 그런데 이 군대는 군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자, 과학 기술자, 예술가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단기간의 원정임에도 1000여 권의 책도 가지고 갔다. 그가 말 위에서 잠을 자고, 말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었다. 믿기지 않지만 기록이 있다.
전쟁터에서,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어렵고 분량이 많아 요즘 사람들도 읽기를 주저하는 <파우스트>를 네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책을 통해 자신감을 표현했다. ‘독서할 시간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다’는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정치, 재정, 천문, 지질, 기상, 인구론 등 폭넓은 독서를 했다. 이집트와 인도의 역사와 지리는 물론 심지어 터키, 몽골의 문화와 풍습을 연구했다. 준비된 황제였다.
나폴레옹은 정독을 기본으로 했다. 독서 후에는 반드시 발췌록이나 메모를 남겼다. 한 번 읽고 잊어버리는 독서가 아니라 지식을 정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또한 독서는 그에게 상상력이란 위대한 선물을 주었다. 그가 전쟁에서 매번 승리하는 영웅이 된 것은 정리된 지식과 상상력의 힘 때문이다.
기존의 전투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 큰 성과를 이루었다. 그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법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참모들보다 본인이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술가였다. 정치든 사업이든 지휘관이 부하들보다 유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활한 부하, 무능한 부하에게 농락당한다. 두 권 읽은 사람이 한 권 읽은 사람을 지배하고, 100권 읽은 사람이 99권 읽은 사람을 지배한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하여 교향곡 3번을 작곡했다. 이름도 〈보나파르트〉라고 정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공화정을 버리고 스스로 황제에 오르자 베토벤은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곡명을 〈영웅〉으로 바꾸었다.
모든 영화를 뒤로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 남겨져 있을 때 고독한 사자의 곁을 지켜준 벗 역시 책이었다. 나폴레옹은 책과 함께 자랐으며, 책을 통해 유럽을 지배했고, 책으로 인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