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중에서
영화 같은 인생을 살다 간 IT 트렌드의 주인공 스티브잡스. 그는 지구촌 제국의 황제였다. 우리는 그를 따르는 고분고분한 식민지 백성이다. 그가 작고한 후에도 영향력을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남긴 독서의 중요성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컴퓨터를 개발함으로써 PC 시대를 열었다. 30여 년이 지난 2007년에는 아이폰을 개발함으로써 스마트폰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기술과 인간의 만남을 주도한 스티브 잡스는 현대 디지털 문화를 이끈 기술자이자, 사람들의 취향을 창조하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입양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생모 조앤 심슨은 보수적인 미국인 집안 출신이었다.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결국 조앤 심슨은 미혼모의 신분으로 잡스를 낳은 후 입양을 선택했다. 심슨은 잡스의 새 부모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부부를 원했다. 그리고 실제로 변호사 부부가 잡스를 입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잡스 대신 여자아이를 택했다. 잡스는 대기자 명단에 있던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돌아갔다. 심슨은 폴 잡스가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고 클라라 잡스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입양 서류에 서명하길 거부했고, 잡스 부부에게 ‘스티브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입양을 허락했다.
당시 북캘리포니아는 급격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넘어온 사이키델릭 음악과 신비주의가 유행했다. 이 두 가지 문화는 잡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잡스는 비틀즈의 팬이자 자유주의의 신봉자였다. 이는 잡스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 복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잡스는 현대 디지털 문화를 이끈 기술자(Technologist)이자 사람들의 취향을 만드는 사람(Tastemaker)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디자인 환경 속에 있기를 원하는지 천재적으로 파악했다.
잡스는 그러한 기능을 실현할 수 있는 기계를 구상하고 자본과 노동을 결합해 애플의 다양한 기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잡스는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묻지 마라. 어떤 제품을 원할지는 소비자들도 모른다’고 했다. 잡스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없는 새로운 것을 그의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계속 개발했다. 잡스는 애플의 디엔에이(DNA) 속에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하려고 했다. 그는 애플의 기술 속에 인문학적 교양과 인간이 녹아들어가길 원했다. 스티브 잡스는 PC 이후 시대에 만들어지는 기기에는 기술과 인간이 결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뛰어난 독서가지만 독서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공부에 의욕을 갖거나 목적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로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잡스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나온 평가다.
잡스는 말썽은 피우지만 독서를 즐기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잡스를 성공시킨 요인을 굳이 꼽으라면 인문학적 소양과 호기심이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다. 모든 것에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그 흥미와 호기심을 집요하게 연구에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어느 날, 집 근처에 살던 기술자가 탄소 마이크로 전자 피리를 만드는 것을 본 잡스는 그 기술자를 줄기차게 쫓아다니며 이유를 물었다. 이를 계기로 그 기술자와 친해져서 다양한 전자 공학의 기초지식을 습득했다.
대학을 중퇴한 잡스가 차고에서 시작한 애플이 실리콘밸리에서 주목 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초창기에는 대기업에 컴퓨터를 납품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젊은 시절 잡스는 셰익스피어 문학과 고전영화에 푹 빠졌다. 회사 이름을 ‘애플’로 지었을 만큼 사과를 좋아해 직접 사과주를 만들기도 했다.
잡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독서와 초밥이라고 말할 만큼 독서광이었다. 애플사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방법 가운데서만 찾는다면 당신은 결코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라.’
‘애플을 만든 결정적인 힘은 고전독서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리드 칼리지 시절 플라톤과 호메로스부터 카프카 등 고전 독서력을 키웠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기술은 인간과 관련 없는 그냥 기술일 뿐이다. 단순한 기술에는 인간 사랑이 없다. 기술의 최고봉인 핵무기에 인류애가 있나? 단순한 기술은 파괴를 인지하지 못한다. 잡스는 이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애플제국은 식민지 백성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