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외래종 핑크뮬리의 국내 생태계 영향력 검증 필요”
“찰칵, 찰칵!” 가을이 오자, 부산 사하구 을숙도 생태공원에 시민들이 몰리고 있다. 보랏빛 핑크뮬리와 갈색 갈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을숙도 생태공원 진입로부터 빽빽하게 들어 선 차량은 핑크뮬리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관람객들은 따뜻한 햇살과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핑크빛 물결을 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핑크뮬리를 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온 직장인 강도현(26, 부산시 진구) 씨는 “SNS에 을숙도 핑크뮬리 사진이 올라와서 기대하고 왔다”며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물이 더 예쁘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안선영(21, 부산시 사하구) 씨는 “예전에 핑크뮬리를 보러 제주도까지 갔다. 이제는 부산에서도 핑크뮬리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핑크뮬리를 배경 삼아 셀프웨딩 사진을 찍는 시민도 있었다. 셀프 웨딩이란 예비 부부가 의상, 소품, 화장 등을 직접 준비하는 간소화된 결혼식을 말한다. 오는 12월 결혼하는 예비 신랑 이현준(32, 경남 김해시) 씨는 “실내에서 촬영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못 찍었을 것”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예비 신부 임현주(29, 경남 김해시) 씨는 “바람에 살랑이는 핑크뮬리가 너무 예뻐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며 “웨딩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둘만의 추억이 생긴 것 같아 너무 좋다”고 했다.
생태공원은 SNS에서 노을이 예쁜 장소로 유명하다.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애인과 함께 온 직장인 박혜정(23, 대구시 수성구) 씨는 “사랑하는 사람과 노을에 물든 핑크뮬리를 보고 있자니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을숙도 주변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사하구 괴정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현경(46) 씨는 “가을까지 태풍이 오고 산사태 사고도 나서 부산 분위기가 좋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생태공원 핑크뮬리 덕분에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하구 하단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황소윤(33) 씨는 “선선한 가을 날씨 때문인지 을숙도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핑크뮬리를 보러 온 손님들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핑크뮬리는 우리말로 분홍쥐꼬리새다. 쥐꼬리를 닮은 풀이란 뜻이다. 미국에서 들어온 외래식물로 가뭄에 강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60~80cm 정도 자라며 가을철 분홍색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군락을 이룬다. 여러해살이풀인 핑크뮬리는 다음해에 씨를 뿌리지 않아도 다시 그 자리에서 자란다. 10월 초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장소와 환경에 따라 11월까지 상태가 유지된다.
을숙도 생태공원은 문화재 지정구역(천연기념물 제179호)이므로 사진을 찍기 위해 핑크뮬리 밭을 헤치고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핑크뮬리를 채취하거나 훼손하면 문화재 보호법에 저촉된다.
지난해 1200㎡로 조성됐던 을숙도 생태공원 핑크뮬리 군락은 올해 1400㎡로 늘어났다. 핑크뮬리를 심은 이유에 대해 낙동강하구에코센터 관계자는 “많은 관람객들이 핑크뮬리를 보러 찾아온다. 더 많은 볼거리와 생태관광을 제공하기 위해 을숙도 생태공원에 핑크뮬리를 식재했다”고 말했다. 낙동강관리본부에 따르면, 을숙도 생태공원은 주말마다 4000여 명의 관람객들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핑크뮬리의 국내 도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환경단체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이성근 씨는 “핑크뮬리는 생태계 교란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이미 자리를 잡은 주류 식물을 밀어내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외래종을 끌어들이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부산대 원예생명과학과 교수 손병구 씨는 “핑크뮬리는 색상이 예쁘고 대중들에게 호감도가 높아 각 지자체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식재하고 있다. 국내에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식물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신중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핑크뮬리는 아직 위해성 검증을 받지 않은 외래식물이다. 위해성 등급을 매기기 위해 올해 말 정밀조사를 진행하고, 위해성이 클 경우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할 것을 검토하겠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다.
과거 을숙도 생태공원은 경작지, 분뇨처리장, 쓰레기 매립장 등으로 이용됐다. 2009년 습지의 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습지확대개선사업이 추진돼 현재 생태공원이 완성됐다. 복원된 을숙도 생태공원은 철새가 머물 수 있는 장소인 철새 도래지와 생태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관계자는 “을숙도 생태공원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관광지로서 활용가치가 큰 지역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생태체험 프로그램 및 계절에 걸맞은 전시를 진행하는 등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