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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의 책과 사람]⑧칼과 사투를 벌이고 책으로 마음을 다스리다-외과의사 이국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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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의 책과 사람]⑧칼과 사투를 벌이고 책으로 마음을 다스리다-외과의사 이국종
  • 김윤환
  • 승인 2019.10.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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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의 원천은 독서다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

모두가 싫어하지만 누군가가 해야 될 일이 있다. 훈련 중에 온갖 고초가 있지만 스포츠에서는 금메달만 따면 목표달성, 임무 끝이다.

목표달성, ‘임무 끝’이 보이지 않는 일, 눈만 뜨면 피투성이와 씨름해야 하는 일, 외과의사 이국종 박사의 일상이다.

양복 입고 가끔 행사에 참석하고 언론과 인터뷰하는 모습은 이국종 박사의 참모습이 아니다.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는 수술실이 그의 일터다. 피투성이 환자의 처참한 모습에 흔들리지 않고 그를 살리겠다는 집념의 덩어리가 이국종 박사의 참모습이다.

강한 정신력, 사명감, 급박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독서는 그를 흔들리지 않게, 반듯하게 움직이게 하는 기둥이다. 이국종의 손에 들린 10센티 메스와 이순신의 2미터 장검은 다르지 않다.

매 순간 생사 고비에 선 외상환자의 몸속을 뚫고 들어가 칼로 사투를 벌이는 그에게 있어 책은,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쓰게 된 난중일기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일까. 이국종 박사가 감명 깊게 읽고 추천한 책은 ‘칼, 전쟁’에 관한 것들이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삶과 죽음의 처절한 현장인 전쟁과 다를 바 없다.

이국종 박사가 추천한 책

<칼의 노래/김훈>

이국종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밝혔다. 이순신 제독(그는 해군 출신이다. 장군이란 표현 대신 제독이라고 표현한다)이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목숨을 바치기까지 겪은 사건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끝없이 일으켜 세운 이순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불안하고 고독한 그의 내면도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는 시간이 나면 이 작품을 다시 읽고 또다시 읽는다고 한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자신의 상황에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김훈>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당파의 다툼, 고통스러워하는 민중의 삶을 그렸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소설적 상상력을 펼쳤다. 순간순간 삶과 죽음을 목격하고 결정해야 하는 중증외상센터 외과의사 이국종. 시간과의 싸움, 결단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안전효>

작품 속 영화광이 작부와 살며 시나리오를 쓰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지만 실은 그것이 할리우드 영화의 교묘한 짜깁기였음이 밝혀진다. 주인공의 삶이 가짜에 불과한 것으로 끝나지만 오히려 카피의 모자이크화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진국에서 가져온 각기 다른 장점의 모자이크를 잘만 맞추어 환자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것이 이국종의 판단이다.

외과의사라고 해서 모든 수술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더 좋은 의술을 가진 세계의 훌륭한 의료진들의 의술을 카피하고 공부해서 모자이크화 하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의사가 환자 살리는 일엔 저작권이 없다. 이국종의 독서는 철저하게 혹은 처절하게 직업의식과 닿아 있다.

<사람의 아들/이문열>

의과대학생이었던 이국종은 대학 때 국문학과 선배한테 물었다. 어떤 책을 읽으면 되냐고. 그랬더니 선배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이문열 책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며 추천했다. 그날부터 <사람의 아>』을 시작으로 <영웅시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이문열 작가의 작품은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는 책을 읽을 때 한 작가의 작품을 마스터하는 독서를 한다. 이문열의 문장은 절세가인 아니 절세가문이다.

<초한지/이문열>

병원은 전쟁터와 다름없다. 삶 아니면 죽음이기 때문이다. 중상자만 다루는 이국종은 환자의 생사를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전쟁물을 즐겨 읽는다. 죽이는 기술이 아니라 살리는 지혜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초한지>는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 전쟁의 주축인 항우와 유방이라는 두 영웅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자들이 충성과 변절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두 주인공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항우와 마지막까지 남은 최측근 무장들이 죽기 전까지 전투를 치르는 상황이 생생한 서사와 묘사로 그려져 있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한다.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되는 그의 칼이 더욱 빛나기를 바라며, 그의 손과 영혼이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책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근에, 이국종 박사의 중증외상센터에 그토록 원하던 의료용 전용헬기가 마련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더 바빠지겠지만 무엇보다 생명을 살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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