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한 번쯤은 ‘아가씨’, ‘서방님’,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자리 잡았던 가족 간의 호칭으로, 여성이 남편의 동생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이 호칭들은 그동안 성차별적인 요소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새로운 언어예절 안내서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를 펴냈다.
이 책에는 남편의 동생을 부를 때 ‘(자녀 이름) 삼촌/고모’라 부르고, 친밀도에 따라 이름을 직접 부를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시대적인 가족 호칭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국어 수업을 듣던 도중 가족 호칭에 관한 내용이 나온 적 있다. 여성인 국어선생님께서는 교과서에 실린 호칭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도중 말을 멈추고는 “사실 마음으로는 이렇게 가르치고 싶지 않다”며, 본인의 경험을 얘기했다. 선생님은 “명절마다 일을 도맡아 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아가씨·도련님이라고 치켜세워주는 것이 억울하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마치 시댁에 팔려온 느낌이 들었다며 부디 우리 학생 세대에는 이런 호칭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매우 속상했다. 그동안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된 남성 중심적인 호칭들이 하루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대는 꾸준히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여성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한쪽 집안만 높여주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성차별 호칭 개선 안내서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는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안내서가 있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실제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다.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직접 수용하고 실천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미디어에 이 호칭들을 노출시키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주말 드라마에 새롭게 적용된 호칭들을 등장시킬 수 있다. 주말 드라마는 주로 가족 중심의 이야기로 전개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호칭을 등장시킬 수 있다. 시청 연령대도 높은 편이고,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만큼 시청률도 높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다. 이런 미디어에서 새로운 호칭을 부각시킨다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뿌리박혀 이를 실천하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높여 부르는 호칭을 들으면, 인간관계에 신분이 있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실제로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과 같은 호칭은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 하인이 양반의 자식들에게 부르던 호칭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내 가족이 나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 사회의 정서와 맞지 않다. 우리는 수평적인 가족관계를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