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물증을 가진 한미 정보 당국의 발표가 옳았다
저널리즘의 기본은 출처 엄격주의...우리 언론은 출처 경시주의를 반성해야
2003년, 나는 방문교수로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그해 3월 20일 밤, 갑자기 정규 방송이 중단되더니, 미공군기가 이라크 전역을 공습하기 시작했다는 긴급 뉴스가 전파를 탔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바그다드 한 호텔 옥상에 설치된 카메라가 비추는 밤하늘의 대공 사격 불빛과 쿵쾅거리는 폭음을 전하고 있었다.
소위 ‘안방으로 생중계된 인류 최초의 전쟁’이라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 TV 긴급 뉴스가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바그다드 호텔에서 진을 치고 전쟁 개시를 기다리던 다국적 종군특파원들이 쏟아낸 뉴스들은 TV 화면 하단에 소위 ‘자막 뉴스’로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 특이하게 잡힌 것은 자막뉴스의 형태였다. 자막뉴스는 “AP reports ...... (AP 통신사가 ...... 라고 보도했다)” “Reuter says ...... (로이터 통신사가 .....라고 말했다)”는 식이었다.
미국 뉴스의 제목에서는 과거동사를 현재형으로 쓴다. 즉, 우리 식으로 보면 ‘보도했다’고 쓸 것을 ‘보도한다’, 또는 ‘보도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런 시제의 특이점보다 더 독특했던 것은 한 줄짜리 자막뉴스 문장마다 뉴스의 출처가 주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외가 없었다. 전쟁이 막 터져서 그 무엇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디어는 ‘누가 무엇을 보도했다’고 알리는 게 최선일 수밖에 없다. 만약 출처를 빠트리면 ‘무엇’만 남는다. 그 ‘무엇’이 기정사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비록 한 줄짜리 자막뉴스라도 미국 언론의 ‘출처 엄격주의’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한 줄짜리 TV 자막뉴스가 국내에도 흔하다. 하지만, 출처란 관점에서 자막뉴스를 자세히 관찰하면 ‘누가(출처)’는 없고 팩트만 있는 미확인 ‘무엇’들이 부지기수다.
뉴스는 출처가 생명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출처의 공신력(source credibility)이 뉴스의 힘이다. 중요한 뉴스일수록 출처의 공신력은 더더욱 중요하다. 김정은 건강이상설, 신변이상설 등이 4월 15일 김정은의 태양절 행사 불참 때부터 솔솔 나오기 시작하더니, 4월 21일부터는 국내 언론에서 김정은 사망설, 뇌사설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국내 언론의 김정은 위중설 최초 ‘출처’는 CNN 보도였다.
당시 CNN 보도는 “믿을 만한 정보를 가진 미국 정부 관리에 따르면(according to 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어떤 수술을 받고 위중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판단되는 첩보를 미국 정부는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리드로 시작된다.
이 엄청난 뉴스의 출처는 ‘믿을 만한 정보를 가진 미국 정부 관리’다. 이 기사에는 이어서 ‘김정은 위중설 첩보에 정통한 2차 뉴스원’ ‘다른 미국 관리’ ‘국가 안보 보좌관 오브라이언’ ‘미 국방성 관리’ 등 다른 출처들이 나온다. 그러나 첫 번째 출처를 제외한 다른 출처들은 김정은 건강이상설 자체를 언급한 게 아니다. 다른 출처들은 그동안 미국이 김정은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거나 위중설 언론 보도의 진위를 파악 중이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CNN 기사의 중간부터는 북한 전문 한국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NK’라든지, ‘한 한국 소식통’ ‘청와대’ ‘한국 통일부’ 등 한국 측 출처와 그들이 언급하는 김정은 위중설 반응이었다. 그래서 CNN이 전한 김정은 위중설의 기사 자체가 ‘단독 출처’에 의한 ‘단독 취재’였는지 의아스럽다.
김정은이 위중하다는 정보의 핵심 출처는 리드에 나와 있는 ‘믿을 만한 정보를 가진 미국 정부 관리’ 하나뿐이었다. 나는 잘 아는 미국인에게 “according to 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라는 출처 표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direct knowledge를 가진 미국 관리’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며 잘 번역해도 '믿을 만한 정보'보다는 ‘해당 주제에 대해 관여된(involved) 관리’ 정도가 무난한 해석이라고 전했다. 결국 지금 와서 따져 보면, CNN이 의존한 김정은 위중설 출처의 공신력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CNN 보도 직후부터 한국 언론들은 김정은 신변 이상설 뉴스를 본격적으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 쪽 출처에서 비롯된 것으로는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으로 “한미 간 관련 사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특이 동향은 없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다음, ‘청와대 관계자’, ‘통일부’,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 ‘문정인 대통령 특보’ 등을 출처로 한 뉴스들이 쏟아졌는데, 다들 한결같이 국정원 국회 보고와 내용이 유사했다. 특히 문정인 특보는 “김정은은 살아 있고 원산에 체류 중”이라고 매우 상세한 정황을 전해서 언론 입장에서는 튀는 ‘출처’로 주목을 받았다.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정부는 (김정은 위중설이) 사실무근이라고 하지만, 북한의 여러 상황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할 만큼 징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언론에 많이 보도된 이 말은 단지 윤상현 위원장 본인이 김정은 건강이 이상하다는 ‘느낌(징후)’을 갖는다는 것으로 출처 없는 추측 수준이었다.
국회의원 당선자 태영호 씨 발언도 화제가 됐다. 그는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이 보도된 후 일주일이 넘은 지금까지도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또, “후계자로서 김평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발언은 북한 출신 전직 외교관이라는 본인의 ‘무게 있는 경험’에 의한 합리적 추론일 뿐 믿을 만한 별도의 출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가장 지탄을 받고 있는 지성호 국회의원 당선자는 “김 위원장이 심혈관질환 수술 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난 주말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 100%는 아니고 99%라고 말씀드릴 정도다. 후계 문제로 (북한이) 복잡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은) 이번 주말에 사망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 내용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나는 그가 이렇게 발언한 출처가 누구인지를 찾아봤다. 그의 발언은 마치 북한 핵심 권력의 움직임을 바로 눈앞에서 본 ‘출처’가 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성호 씨 발언 출처의 공신력이 매우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국내 언론들이 지성호 씨의 발언만 전했지 그 발언의 근거가 되는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줄줄이 나열된 지성호 뉴스 리스트를 꽤 오래 뒤진 후에야 소수 언론에서 지성호 씨가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는 표현을 찾을 수 있었다. 과연 지성호 씨의 ‘북한 내부 소식통’이 누구였을까? 그 소식통은 김정은의 동태를 ‘직관’할 수 있는 사람(1차 출처)이었을까? 지금에 와서 우리 언론이 한탄할 일은 지성호 씨의 소식통(물론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었겠지만)이 수차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사람 중 하나인 ‘n차 출처’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김정은이 5월 1일 깜짝 등장했다(북한 발표는 2일 새벽). 미국의 특수 정찰기가 김정은 잠적 20일 동안 여러 대 한반도 상공으로 출동했고, 북한 전역을 샅샅이 훑은 후에 김정은에 대한 물증을 잡았으며, 이를 한미 간 공유했기에 한국 정부 측, 트럼프, 폼페이오 등의 발언이 김정은 신변 이상설을 부인하던지 아니면 노 코멘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국내 언론들이 보도했다.
결국 휴민트(사람 정보)든 테긴트(TECHINT, 기술 정보)든 정보 찾는 눈과 귀를 가진 정부의 발표가 가장 정확했다. 이를 부인했던 민간인들의 출처와 그 출처를 옮기는 언론은 출처의 공신력을 잘 살피지 못했다. 언론이 인용한 출처는 그 출처가 의존한 출처가 또 있을 것이고, 그 출처의 출처가 김정은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친 ‘n차 출처’인지를 우리 언론들은 따지지 못했다. 초정밀 정찰기에 의해 확보된 영상 정보를 보고, ‘떠버리’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을 놀리듯 “(김정은 동태를) 잘 알고 있지만 말해 줄 수 없지롱” 투의 말을 언론에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트럼프의 자신감은 바로 ‘n차 출처’가 아니라 ‘1차 출처’에 의한 출처 공신력의 힘이었다.
김정은 깜짝 등장 소식이 우리에게 전달된 5월 2일 새벽 6시경, 1신은 사진 없는 라디오 뉴스, 뒤이어 오전 9시 30분경에 나온 2신은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 기사, 그리고 오후에 가서야 3신인 중앙조선TV 영상이 공개되면서, 모든 의혹이 일시에 해소됐다. 김정은 신변 이상설의 출처를 계속 분석했던 나는 사진 없이 라디오 방송만으로 김정은이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는 뉴스가 나오자마자, CNN과 조중동 3개 언론의 스마트폰 뉴스 화면을 캡처했다.
라디오 뉴스 1신을 전한 시점에서 이들 네 기사를 비교해 보자. CNN 뉴스에는 사진이 없다. 라디오가 준공식 현장 사진을 전할 리 없다. 그러나 한국 매체에는 다 김정은 사진이 있는데, 이들은 비료공장 준공식 사진이 아니라 모두 과거의 자료사진이다. 이 자료사진들이 독자들을 잠시 혼동시켰을 것이다. 유독 CNN만이 당시 기사 안에서 “준공식 사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No pictures of the ceremony have not yet emerged)”고 보도했다. 또한 CNN만이 제목에 “김정은이 몇 주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려냈다고 ‘북한 관영 미디어’가 보도했다”고 적었다. 제목에 ‘북한 관영 미디어’라는 출처를 밝힌 것이다. 동아일보는 출처를 ‘북한 관영 미디어’가 아니라 ‘북한’이라고 적었다. 나머지 조선과 중앙의 제목에는 출처 표시가 없었다. 뉴스의 보도 시점에서 확인된 정보가 보도 말고 없다면, 그 보도의 출처는 매우 중요하다. 그 보도 자체가 번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뉴스는 제목에 출처를 밝히는 게 정상이다. 이번에 우리 언론이 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
뉴스 취재는 출처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기사화 여부는 출처의 공신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뉴스원들이 들었거나 봤다고 주장하는 출처가 ‘오리지널 뉴스 메이커’로부터 몇 다리를 건넌 ‘n차 출처’인지를 따져야 한다. 1차로부터 멀어질수록 출처의 공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뉴스일수록 제목은 물론 리드에서부터 출처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출처는 문장마다 밝히는 게 원칙이다. 기자는 제3자가 문장 하나하나에 밑줄을 그어가며 출처를 따졌을 때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밝혀졌다’ ‘알려졌다’와 같은 ‘출처 기만주의’ 내지는 ‘출처 경시주의’ 표현은 이번 기회에 우리 언론에서 퇴출시키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