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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1980년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한 학기 문 닫은 대학...‘꼰대라떼’ 교수들의 비대면 온라인 강의 분투기(奮鬪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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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1980년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한 학기 문 닫은 대학...‘꼰대라떼’ 교수들의 비대면 온라인 강의 분투기(奮鬪記)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20.06.14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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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한 학기 비등교 상황은 1980년, 2020년 두 차례
영상강의는 흥정 없는 온라인 쇼핑, 기계로 지식 사고파는 자판기
"학생들이 그립다" 노 교수의 한탄도 이어져
교수 학생 모두 영상강의라는 '뉴노멀'에 도전 중

지난 2월 말경, 국내 코로나 감염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3월초 개학이 가능한지를 논의하느라 바빴다. 나는 문득 한 학기 내내 학교 문을 열지 못했던 1980년 계엄령 시절을 떠올렸다. 그해 군대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한 나는 3월 한 2주 정도 학교를 나간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에 의해 교문이 닫히자, 시골로 낙향하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 등교하라는 가정통신문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학기가 다 끝나가도록 그런 연락은 없었다.

그런데 학기 종료 직전, 한 통의 가정통신문이 학교로부터 배달됐다. 거기에는 모든 과목별 과제 리스트와 과제를 우송할 교수 연구실 주소가 적혀 있었다. ‘원서강독’ 과목 숙제는 교재인 영어 원서 한 권을 모조리 번역해서 제출하라는 식이었고, ‘통계학’ 과목 숙제는 교과서 속의 통계 계산 연습문제를 전부 풀어서 제출하라는 식이었다. 그 뒤 처지가 같은 고향 친구 예닐곱이 낮에 비는 선배 아파트를 빌려 날마다 모여 키득키득하며 ‘놀멍쉬멍’ 방학 내내 숙제하던 추억이 새롭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올 3월, 나라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들어가고, 대학은 비대면 강의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으로 빠져들었다. 덕분에 나는 학생 입장에서 1980년 전두환에 의해 벌어진 계엄령 때문에 대학이 한 학기 문을 닫은 역사의 희생자가 됐으며, 그 후 40년 만에 교수 신분으로 코로나 때문에 다시 학교가 한 학기 문을 닫는 상황의 참여자가 됐다. 그리고 그 비련의 한 학기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흥정이 없는 상거래가 온라인 쇼핑이다. 기계에게 돈을 주고 기계가 내주는 물건을 집어 드는 게 자판기다. 대학가에 몰아닥친 비대면 수업의 정체는 학생과 교수 간 밀당도 없는 온라인 쇼핑 같고, 화상강의 프로그램을 사이에 두고 지식을 사고파는 자판기 같다. 교수들은 과연 코로나가 몰고 온 이 요괴스런 비대면 수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찌 대처하고 있을까?

화상강의 프로그램 줌 로고(사진: flicker 무료 이미지).
화상강의 프로그램 줌 로고(사진: flicker 무료 이미지).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맞은 한 노(老) 교수의 실화를 최근 들었다. 그에게 비대면 수업은 충격 그 자체였다. 겨우 조교의 도움으로 줌(zoom)이란 실시간 영상강의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혔고, 몇 주 강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교수 생활 마지막 학기에 학생들 ‘진짜’ 얼굴 한 번 못 보고 강단을 떠날 생각에, 그의 마음은 천 조각 만 조각 찢기는 듯했다. 그 노 교수는 “내가 무슨 형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다. 아이들이 그립다. 정말 내 교수 생활에 이렇게 아이들 얼굴을 보고 싶은 적은 없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노 교수는 어느 날 작심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안부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교수의 카톡으로 보내라는 과제를 냈다. 그는 이것도 비대면 강의의 엄연한 과제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동영상 찍어서 SNS에 올리는 데 익숙한 제자들은 신속히 동영상을 교수에게 하나둘 보내기 시작했다. 노 교수는 틈만 나면 학생들 동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누구 영상을 보곤 웃고, 누구 영상을 보곤 울기도 했다. 학기가 끝나가자, 그는 “이제 난 학생들 얼굴을 다 기억한다. 영상강의 화면만 봐도 학생들 출석을 부를 수 있다”고 동료 교수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늘 익숙했던 학생들의 표정, 고개 끄덕임, 때로는 시끄럽게 들리던 학생들의 웃고 떠드는 잡담이 그립다고 했다. 학생과 교수가 머리를 맞대고 코로나 시대의 원수라는 ‘비말’을 튀겨가며 싸우듯 논쟁하고 잡아먹을 듯 토론하던 강의실이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의 산실(産室)인 줄을 그 교수는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어느 대학 한 학과에서는 교수나 학생 모두가 낯선 비대면 영상강의에 서로가 답답함을 토로하고 때로는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때 그 학과 교수들은 각자 맡고 있는 지도학생들과 수시로 1대1 전화 통화를 해서 학생들 안부도 묻고, 어려움도 청취하는 일종의 ‘전화 소통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렇게 얻은 학생들 의견을 교수들이 공유하고 하나하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갔다. 당연히 학생들 불만은 줄어들고,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학생과 교수들이 가까워졌다. 이 사례를 전해 들은 학교 본부는 가능하면 그 학교 모든 다른 학과 교수들도 학생들과 전화로 소통하기를 권장했다고 한다.

학교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비대면 강의는 실시간 영상강의, 미리 제작된 동영상이나 PPT 강의, 과제 중심 수업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는데, 교수들이 느끼는 여러 비대면 강의 방법의 공통점은 교수들의 수업 준비가 늘었다는 거였다. 고등학교 시절 연예인 뺨치는 세련된 ‘일타강사’들로부터 인터넷 영상 수업에 익숙한 대학생들에게 ‘꼰대라떼’ 교수들이 영상으로 강의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영상강의다 보니 강의실에서는 말로 끝냈던 것도 동영상 자료나 사진 이미지를 하나라도 더 동원해야 했다. 거기다가 시험은 어떻게 치룰 것이며, 과제는 어떻게 채점하고 어떻게 학생들에게 피드백할 것인지도 고민거리였다.

한 교수는 영상강의에서는 필기시험이 어렵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묵직한 과제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냈다고 한다. 그리고 과제 피드백을 해주기 위해서 30명 되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약속을 잡아 전화로 과제에 대해 장단점을 설명해줬다고 한다. 나중에 통화 시간을 체크해 보니 한 학생당 평균 30분이 넘었다고 한다.

나는 학기 초 영상강의가 시작될 때부터 강의실에서 모여서 시험 보는 평가 방법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매주 학생들에게 그 주 교재 범위를 읽고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매주 실습 기사 스토리를 완성해서 내 이 메일로 보내게 하는 과제를 부여했다. 나는 매주 수업 시간 전에 학생들이 낸 과제를 일일이 읽고 코멘트와 함께 채점한 다음, 사진을 찍어서 학생들에게 개별 카톡으로 전달했다. 리포트 제출 횟수는 학기당 10회를 넘기게 됐고, 학생들은 문장마다, 또는 문단마다 촘촘히 달리는 나의 코멘트 때문에 허투루 써낼 엄두를 못 내고 한주 한주 힘겹게 과제를 해내고 있다. 나는 내가 담당한 이번 학기 3개 과목 모두를 이런 식으로 평가하다 보니 리포트 채점하느라 주말을 잊었다. 그 통에, 나는 코로나 자가격리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됐다.

실시간 영상강의의 문제는 학생들 질문이 적다는 게 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영상강의 중 채팅창으로 질문을 던져서, 강의실에서 질문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shy 학생’들이 영상강의에서는 채팅 질문에 참여하는 이점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영상강의에서 학생들은 강의실에서보다 질문하기를 꺼렸다. 영상강의가 강의실 강의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하니, 교수들은 자주 화상이라는 이미지의 ‘벽’에 대고 강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강의 접속 기록이나 강의 영상이 자동 녹화되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학교의 학사 관리 시스템으로 감시당하고 강의내용 공개를 통해서 교수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교수도 있었다.

모든 학교에서 비대면 영상강의는 크고 작은 기술적 문제가 많았다. 처음에는 네트워크 부하가 문제였지만, 영상강의 프로그램에서 원인불명의 기술적 장애가 발생해서 어려움을 겪은 학교와 교수들도 많았다. 일부 정체불명의 기술적 장애가 우연하게 해소된 경우도 있지만, 프로그램 운영 전문가도 알 수 없는 장애들이 일종의 ‘버그’처럼 발생해서 교수와 학생들의 애를 태운 경우도 많았다. 교수도 강의실에서 실수하고 실언할 수 있지만, 기계도 완벽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수 실수가 ‘인간적’이라면 기계의 순간적 먹통 현상은 그냥 부수고 싶은 ‘비인간적’ 충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올해 제일 불쌍한 대학생들이 1학년 신입생들이다. 이들은 대학 합격의 기쁨을 누리면서 봄꽃이 만발한 캠퍼스를 거닐 낭만을 꿈꿨으나, 학교 교문이 굳게 닫히는 바람에 아직 학교 구경 한 번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어느 대학 한 학과는 1학년의 비통한 심정을 파악하고,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며 교수와 신입생 상견례를 갖고, 교수들의 한끼 식사 대접으로 비대면의 아쉬움을 달랬다고 한다. 이들 교수와 신입생들의 만남은 코로나 감염 공포를 무릅쓴 눈물겨운 사제상봉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학기초부터 지금까지 사이버대와 같아 버린 일반대 수업 방식 때문에 일반대 등록금 일부를 환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수들이 익숙지 못한 비대면 강의에서도 지식 전달에 부족함이 없고, 성적 평가를 공정하게 하려고 각자 분투하는 이유는 등록금 환불을 막으려는 궁여지책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처럼, 교수들 역시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교육에 최선을 다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이렇게 불만과 고통과 헌신이 뒤엉켜 대학의 한 학기가 저물고 있다. 문제는 다음 학기다. 오는 9월, 대학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을까?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대학은 다음 2학기에도 이렇게 비대면 강의를 기본으로 일부 실습과목 등교 수업과 일부 등교 기말고사로 진행되지 않을까?

아무도 모른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가 200만 명을 넘으리라는 것을 전 세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오는 9월 대학이 문을 열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문이 닫힌다 해도 교수들과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이라는 ‘뉴노멀’에 도전하고 적응해서 대학의 상아탑을 지킬 것이다. 6.25 피난 시절에도 우리는 부산에서 천막교실을 열지 않았던가? 이렇게 국내 대학들은 1980년에 이어 2020년에도 한국 역사상 두 번째로 교문을 굳게 닫은 채 한 학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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