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 이내 낙태 전면 허용' 법 개정안 입법예고...여성계는 낙태죄 폐지 주장하며 반발
취재기자 안시현
승인 2020.10.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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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상 낙태죄는 유지하되 임신 초기 14주까지 임신여성 자기 의사에 따라 낙태 가능
임신 15~24주는 성범죄로 인한 임신, 임부 건강 위험 외에 사회 경제적 사유 있으면 허용
여성단체, "결국 낙태죄 유지" "임신 14주에서 하루라도 넘겨 낙태하면 범죄자되는 꼴" 비판
낙태를 처벌하는 낙태죄가 오늘부터 일부 허용하는 내용으로 정부가 관련 법을 개정해 입법예고에 들어간다. 해당 개정안은 낙태죄는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에는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임신 중기인 15~24주에는 특정사유가 있을 때만 허용하는 등 조건부 허용하는 등의 조항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성단체는 반발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9일 “14주? 16주? 임신중지 기한제한은 낙태죄 유지와 다름없다”며 낙태죄 폐지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표했다.
이 개정안은 작년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법무부가 내놓은 개정안이다. 헌법재판소는 정부에 올해 12월 31일까지 형법상 낙태죄를 개선하라는 주문을 한 바 있다.
법무부는 이번 법 개정을 통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실제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런 종합적인 제도개선이 이뤄지도록 정부는 법조계·의료계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동시에 개정한다.
형법에서의 개정안은 낙태 허용요건을 형법에 확대해서 편입해 처벌조항과 허용요건을 규정했다. 또한, 국가가 전면적·일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형법에 ‘낙태 허용 요건’ 조항을 신설했으며, 기존 낙태죄에 대한 처벌·허용 규정을 형법에 일원화했다. 게다가, 기존 허용사유에 경제적·사회적 사유를 추가로 규정해 낙태죄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려했다.
형법 개정은 낙태에 대한 허용기간과 허용 사유도 새로 규정했다. 임신유지·출산여부의 결정가능기간을 임신 24주 이내로 설정하고 14주와 24주로 구분하여 허용요건을 차등으로 규정했다. 현행법상 낙태는 임신 24주 이내에 부모의 유전학적 질환이나 강간, 근친, 임부 건강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개정안을 통해 임신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과 같은 절차 없이도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로 낙태를 결정할 수 있다. 15주부터 24주까지는 기존의 사유와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절차적으로 낙태방법을 의사가 의학적으로 인정한 방법으로만 하도록 규정하며,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에 상담과 하루 동안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동시에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비판이 있는 기존 배우자 동의 요건은 삭제했다.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시술방법을 구체화해 선택권을 늘렸고,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교육이나 상담기관을 설치하는 등의 대대적인 개정을 거쳤다. 낙태를 위한 서류의 경우, 심신장애는 법정대리인 동의로,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 대신 상담사실확인서 등으로 교체했다. 의사의 개인적 신념에 의한 인공임신중절 진료 거부를 인정하면서 시술접근성 보장을 위해 거부하는 즉시 상담기관을 안내하게 하는 등 절차를 마련했다.
정부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외에도 약사법을 개정해 낙태 암시 문구나 도안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며, 자연유산 유도 의약품 허가를 신청받아 의약품의 안전사용 시스템과 불법사용 방지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했다.
개정안은 오늘부터 입법예고를 시작으로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에 들어간다. 법무부는 “정부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원활한 논의를 지원해 연내에 법 개정이 완료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단체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성단체는 계속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해왔기 때문인데, 이번 법 개정안은 사유가 없는 경우, 14주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 누리꾼은 “임신 14주를 하루라도 넘겨서 낙태한다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는 것”이라며 “이번 법 개정안은 결국 기존 낙태죄 유지에 불과하다”며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낙태죄에서는 의사와 임부만 해당하는 것이 상당히 불합리하다. 낙태죄 처벌하려면 임신시킨 남성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낙태죄를 반대하는 쪽도 불만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사회·경제적인 사유는 불분명한 기준이다. 너무 포괄적이고 낙태를 남용할 소지가 굉장히 농후하다”며 낙태 허용 조항을 지적했다. 해당 발언은 “낙태하면 할수록 여성들 자신의 몸을 망치는데, 누가 낙태를 남용하겠나”라며 여성들의 원성을 샀다.
한편, 지난 5일 국회의 국민동의 청원 홈페이지에서는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는 청원이 올라온지 이틀만에 약 3만 명이 동의한 상태다.
■다음은 청원 전문이다.
낙태죄로 인해 대한민국 여성은 자신이 아이를 언제 어떻게 낳아 키울지, 혹은 낳지 않을지 결정할 권리가 없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낙태죄는 여성의 건강에도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대한민국은 WHO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인증한 유산유도제 ‘미프진’을 아직도 수입하지 않으며, 식약처는 약물 수입을 위한 안전성 검사를 의뢰한 제약 회사가 없다는 이유로 수입 허가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 및 가짜 약물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이상곤, “불법 낙태약 판매 기승… 낙태약 처방 도입해야”, <YTN>, 2020.5.14). 또한, 지금까지 임신중단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의료인들은 임신중단 시술 방법을 교육받지 않았다(윤정원 외, 「배틀 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후마니타스(2018)). 현재 대한민국에서 행해지는 임신중단 시술은 구시대적이며 자궁 천공의 위험이 있는 소파술을 주로 사용한다.
낙태죄는 여성들을 경제적으로도 핍박한다. 대한민국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임신중단 방법들은 터무니없이 값비싸다.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불법 약물은 임신 7주 이하는 36-39만 원, 7주 이상은 55-59만 원 선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설상미, “낙태약 ‘미프진’ 비밀거래 고발”, <일요시사>, 2020.4.22). 또한, 음지에서 이루어진 임신중절 수술 비용은 30-50만 원 미만 41.7%, 50-100만 원 미만 32.1%로 그 범위가 넓었는데, 이는 ‘부르는 게 값’이었던 현실을 보여준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18)). 이는 연령이 낮은 미혼들에게 더욱 큰 부담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판결하고 2020년 12월 31일을 법 개정 시한으로 정했다.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2020년 10월 현재까지도 정부 부처는 임신주수에 따른 선별적인 낙태 허용을 거론하며 여전히 여성의 몸에 대한 주권을 침해하려 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안한다.
1.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법의 관점을 여성의 성, 재생산권으로 전환하라.
- 모자보건법 제14조와 임신중단 여성 및 의료인에 대한 처벌을 전면 폐지하라.
- 모자보건법을 여성아동건강법으로 법률의 관점을 전환하라.
- 모자보건법 제1조 ‘모성’을 ‘여성’으로 변경하라.
- 법률과 공식 문건에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 ‘낙태’ 대신 ‘임신중단’ 혹은 ‘임신중지’로 용어를 변경하라.
2. 인공임신중단 의료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보장하라.
- 가짜 피임약 판매자 처벌 강화를 위해 경찰의 함정수사를 허용하고 가짜 약 판매 적발 시 생명 위협과 동일한 수준의 처벌을 받는 법안을 제정하라.
- 임신중단 유도약(미프진) 수입허가를 위한 식약처 안전성 검사를 시행하여 국내에 미프진을 도입하고 국내 피임약 가격 수준으로 보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