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이코노미석을 타고 밤새 이동하는 것은 고역이다. 말이 이코노미석이라고 하여 경제적 좌석이지만 가장 불편한 3등석이다. 좌석을 뒤로 살짝 기울여 허리를 약간 펼 수는 있지만 그리 앉아서 자면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다. 만일 뒷 자리에 자기 영역을 고수한다며 그리 펴는 것을 막는 작자가 타면 서로 꼿꼿이 90도 각도의 좌석에 앉아서 가야 한다. 미련한 짓이다. 승객들 모두 좌석을 뒤로 기울여 가면 좀 더 편할 텐데 안타깝다. 나는 앞에 앉은 사람이 나를 생각해 좌석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맘껏 쭉 펴라고 일부러 말하기도 한다. 그래야 나도 펴고 서로 좋다. 이런 게 서로 좋은 상생(相生)이다. 그렇게 해도 조금 편하다는 것이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어서 시간이 빨리 가기 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영화를 보는 것은 눈이 피곤하지만 정말로 시간을 죽이는(killing time) 용도로는 적당하다. 영화 몇 개를 고르다가 하나의 영화를 골라 정식으로 보게 되었다.
영화 제목이 '인페르노'다.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처럼 댄 브라운이라는 유명 작가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한 남자가 대중강연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구가 너무 늘어서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며 그는 누군가에게 쫓긴다. 쫓기는 그는 치명적 바이러스를 퍼트려 인류의 절반 이상을 몰살시키려는 생물학자이고 쫓는 사람은 세계보건기구(WHO )요원이다. 이 때 자막이 흐른다. “인류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암세포야!” 지금 이대로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면 100년 안에 인류는 멸종되므로 지구 생명체에서 암세포와 같은 인류의 절반을 참혹한 지옥(Inferno)으로 몰아넣어 죽여야 한다는 것이 쫓기는 자의 계획이었다. 그는 자신의 엄청난 인류 학살계획을 어딘가에 암호처럼 남긴 채 쫓기다 죽는다. 그 단서는 단테와 보티첼리의 작품이다. 주인공이 암호 흔적을 풀어 대재앙을 막는다는 영화인데 뭔가 세부적 스토리가 복잡하다. 그래도 전반적 이야기는 간단하다.
시간 죽이기 용으로 본 영화였지만 심각한 내용을 다룬 무거운 영화였다. 다만 이태리 사람이었던 단테와 보티첼리의 작품에서 스토리를 이어가는 영화이기에 로케이션 장소는 이탈리아, 즉 이태리다. 내가 가려는 곳들 중에 하나인 피렌체와 베니스다. 영화속에서도 유럽의 여느 도시의 구도심(old town)처럼 도시의 전경이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도시의 아름다운 전경이나 유적지, 박물관을 관광삼아 보러 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니면 보이기에 보기는 하겠지만 우리 인류문명의 전환에 관한 나름 거창한 주제인 美~女~文의 소재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찾으러 가는 것이다. 영화 '인페르노'에서는 인구의 절반을 죽여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름답고(美) 여성스러운(女) 생활방식(文)을 지니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책을 위한 쓰기 위한 여정이 잘 되기를 바라며 잠을 청하지만 도무지 의자에 앉아서 자는 것은 자도 자는 게 아니기에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