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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들, "'불멍'은 최고의 뇌 휴식 활동"...차박족 장작불부터 유튜브 불멍 영상까지 멍 때리기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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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들, "'불멍'은 최고의 뇌 휴식 활동"...차박족 장작불부터 유튜브 불멍 영상까지 멍 때리기 유행
  • 취재기자 구다민
  • 승인 2021.05.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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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 코로나19로 인해 차박, 캠핑 즐기며 '불멍' 만끽
제주 서귀포시 불멍 대회 영상 조회수 177만 회 돌파
뇌과학자들, 멍때리기는 뇌의 '디폴트 모드'와 동일 주장
김예지(23, 부산시 북구) 씨는 또래 친구들과 조금은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다. 캠핑을 하며 '불멍'을 즐기는 것. 김 씨는 가족 모두가 캠핑을 좋아해 주말이 되면 다 같이 캠핑장에 가서 갖가지 음식을 해 먹고, 밤에는 장작불을 피워 가족끼리 둘러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타오르는 장작불을 지켜보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불멍은 '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2016년부터 캠핑족들이 쓰던 신조어가 자주 언급되면서 불멍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는데, 특히 코로나19 시대에 사람들의 취미가 실내 공간이 아닌 실외로 전환되면서 캠핑족과 차박족이 늘어났고, 이와 동시에 불멍도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대학생 김예지 씨가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가 불멍을 하기 위해 장작불을 피우는 모습(왼쪽)과 야외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사진 제공: 김예지 씨).
대학생 김예지 씨가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가서 불멍을 하기 위해 장작불을 피우는 모습(왼쪽)과 야외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불멍을 만끽하는 모습(사진: 김예지 씨 제공).
메가박스에서는 이러한 트렌드를 읽어 지난 19일 '메가릴렉스-불멍'을 선보였다. 총 31분 동안 상영되는 이 영상 프로그램은 모닥불의 실감 나는 사운드와 영상을 통해 마치 영화관 내에서도 캠핑장에 온 듯한 평온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지쳐있는 국민들에게 잠깐이나마 일상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 같은 콘텐츠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멍 같은 멍 때리기 콘텐츠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제주 서귀포시는 26일부터 6월 1일까지 '2021 웰니스 숲 힐링 기다린 봄, 치유 일주일'이라는 주제로 제주시 최초로 '웰니스 멍 때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현장에서 직접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기도 하는데, 현재 유튜브에 게재된 불멍 영상은 최고 조회수 177만 회를 넘어간다. 김정호(24, 부산시 북구) 씨는 "새벽에 잠들기 힘들 때 장작불 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잠이 잘 온다"며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까지 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야외에서 캠핑을 즐기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집에서 캠핑 용품을 활용해 불멍을 즐기기도 한다.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불멍 용품을 구입해 홈캠핑을 즐기는 대학생 조은희(24, 부산시 금정구) 씨는 "학생이라 캠핑 용품을 제대로 사서 즐기기가 힘들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홈캠핑에 대한 정보들이 많았다. 집에서 안전하고 저렴하게 캠핑과 불멍을 즐기니 너무나 색다르고 좋았다"고 말했다. 멍 때리기 콘텐츠는 더 이상 반짝 하고 지나가는 일회성 콘텐츠가 아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24시간이 모자란 바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여가 시간이 생겨도 스마트폰을 하거나 게임을 하며 하루 종일 뇌를 사용한다.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2001년 자신의 논문을 통해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데에는 DMN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DMN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의 약자로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특정 부위를 마커스 박사가 명명한 것이다. 마치 컴퓨터를 리셋하게 되면 초기 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바로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 마커스 박사는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자기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DMN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제주에선 불멍 행사도 열린다(자료 출처: 와우 서귀포 블로그).
제주에선 불멍 행사도 열린다(자료 출처: 와우 서귀포 블로그).
그만큼 멍 때리기는 생각보다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성균관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신동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 '멍 때려라'에서 "멍 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두뇌를 깨우고 명쾌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과도한 멍 때리기는 오히려 뇌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건강의학전문포털 하이닥에서는 "습관적인 멍 때리기는 뇌세포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치매 가능성이 높아지고,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며 "하루 15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뇌를 쉬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멍 때리기'는 비생산적인 행위로 치부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히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멍하니 있다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다. 가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하다면, 잠깐이라도 멍~때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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