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있는 경성대학교 후문으로 올라오는 좁은 골목길. 그곳에서 깔끔한 옷차림을 한 중년 남성이 환경미화원처럼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한 손엔 길다란 집게를 들고 다른 한 손엔 100ℓ짜리 쓰레기봉투를 들고. 형광색 보호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환경미화원은 아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그는 왜 학교 앞 골목길을 청소하는 것일까?
학교 골목길 청소부는 경성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박기철(57) 교수다. 그는 본지에 벌써 수 개월째 쓰레기와 관련된 칼럼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일명 ‘쓰레기 박사,’ 혹은 ‘쓰레기 교수’로 불린다. 자칫 잘못 들으면 최악의 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쓰레기를 청소하는 교수'라는 뜻을 가진 일종의 애칭이다. 그는 주변에서 독특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다. 쓰레기 문제에 대한 그의 특별한 시선과 관심 때문이다.
그는 갈수록 넘처나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 쓰레기 문제에 관한 글을 1년 동안 꾸준히 썼다. 그 동안 쓴 쓰레기에 관한 글을 모아 <아~ 쓰레기>라는 책까지 펴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자신이 보고 느꼈던 쓰레기 문제에 관한 생각을 일기처럼 적었다. “쓰레기 범람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우리 삶의 핵심적인 고민거리”라는 문제 의식을 책 속에 담아냈다.
365일간 기록된 쓰레기에 관한 그의 단상을 읽은 독자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쓰레기에 관한 글을 썼다는 것에 먼저 놀라고, 쓰레기라는 소재로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 하고 두번 더욱 놀란다. 365일간 쓰레기 보고서를 다 쓰고 난 뒤 그는 “매일 쓰레기에 대한 글을 썼다는 점에서 뿌듯했지만, 글을 썼다고 해서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허탈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이나 글로써로만 쓰레기 문제를 지적할 게 아니라 몸소 실천하며 자신부터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일이 자신의 직장인 경성대 후문 골목의 쓰레기 청소. 그는 100ℓ 쓰레기 봉투와 집게를 들고 한 달에 한 번씩 후문 입구에서부터 식당들이 늘어서 있어 학생들이 '밥골'이라 부르는 거리까지 약 100m 거리를 청소한다. 그곳에 있는 쓰레기를 줍다 보면 100ℓ짜리 쓰레기봉투는 금세 다 채워진다. 차를 타고 가다 버린 쓰레기나 집에서도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쓰레기를 발견하면 그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는 “자신의 편의만 생각해 쓰레기를 버리고 가지만 그것은 모두의 피해로 되돌아 온다”고 말했다.
요즘 그가 가장 많이 발견하는 것은 카페에서 파는 커피나 음료의 테이크 아웃 잔. 현대인들은 머그잔을 쓰기보단 일회용 컵을 많이 사용하고 쉽게 버린다. 또 요즘 길거리엔 쓰레기통이 사라져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쓰레기통이 몇 개나 있는지 세어 보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다며 웃는다. 아예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회용 테이크 아웃 잔의 사용 증가와 쓰레기통의 부재가 쓰레기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깔린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인식이 부족한 데다 쓰레기통까지 없으니 쓰레기가 길에 방치되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가 쓰레기통을 길가에 설치해 지속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게릴라 가드닝'이란 말은 방치된 땅, 잘 관리되지 않는 땅에 정원을 가꾸는 활동을 말한다. 그는 게릴라 가드닝과 같은 캠페인을 통해서 길가 후미진 곳이 정원으로 잘 가꾼다면 행인들이 함부로 길에다 쓰레기를 버리는 행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성대 후문 골목 주변의 잡초밭에는 쓰레기가 잔뜩 버려진다. 그래서 그는 잡초밭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 위해 좁은 틈으로 들어가곤 하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고 후미져 애를 먹는다고. 한 번은 안경을 잃어버리고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화단으로 꾸며진 꽃길에는 함부로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쓰레기 버리는 인간' 이란 뜻을 가진 'homo rubbish'는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지구 상에서 인간만이 쓰레기를 배출하기 때문에 인간은 쓰레기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에서 박 교수가 만든 용어다. "인간은 계속해서 쓰레기를 배출하지만, 지구라는 건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쓰레기를 버려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지구가 연약한 존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애로운 존재도 아니기에 곧 그 대가는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고 그는 말했다.
쓰레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가장 기초적인 소망에서 비롯됐다. 그는 “거창하게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보다 생태계가 우리에게 내어 준 삶터를 고마워하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기본적인 쓰레기 줍기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의 '쓰레기 철학'은 인간의 첫걸음은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것, 행여 남긴 쓰레기가 있다면 그것을 잘 치우는 것이다. 소박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기본도리가 무언지를 성찰하게 하는 깊이가 있다.
넘처나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