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 본산인 아테네의 도편추방제도 악용되고 잘못된 판단 내려 폐지된 역사 되새겨야
BTS 병역특례 대상에 포함시키든 아니면 현행 고수하든 관련 법과 시행령 통해 정식으로 접근 필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도편추방제(오스트라시즘 혹은 오스트라키스모스) 투표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해외로 추방하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어 공회장에 설치된 투표함에 던지는 투표일이다.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10년간 해외로 추방된다. 일설에는 한 사람을 추방하는데 6000개의 도자기 파편이 필요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날 ‘정의로운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던 아테네의 정계 거물 아리스티데스도 투표장으로 향했다. 거리를 지나던 그 앞에 한 사내가 조개껍데기를 불쑥 내밀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에 아리스티데스라고 써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글씨를 쓸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무슨 피해라도 입혔나요?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요?“ 사내가 말했다. “아니오. 나는 그 사람 얼굴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아리스티데스는 위대한 인물이라느니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떠들어 대는 통에 이제는 그 말이 진저리가 나서요.” 아리스티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자기 파편에 자기 이름을 써서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해 아리스티데스는 추방되었다.
그는 아테네를 떠나면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이렇게 기도했다. “이 땅의 민중들에게 아리스티데스를 다시 생각할 정도의 불행이 아테네에 생기지 않게 해 주소서.”
아리스티데스의 추방에는 정치적 동지이면서도 정적이기도 한 데미스토클레스의 술책도 작용했다. 아리스티데스가 추방되고 3년 뒤, 페르시아가 쳐들어 왔다. 아테네가 위기에 빠지자 아리스티데스는 다시 불려온다. 마치 그가 추방당할 때 했던 기도처럼.... 아리스티데스는 총사령관인 데미스토클레스와 다시 손을 잡고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아테네를 구한다.
페르시아 전쟁 영웅 데미스토클레스도 그 후 도편추방의 희생자 명단에 올라 추방된다. 결국 이 제도는 기원전 417년 폐지된다. 아테네 시민들도 도편추방제가 악용돼 국익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고 감정적 분위기에 휩쓸려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모른다.
실제로 당시 아테네의 유권자 수, 즉 성인 남성 시민의 수는 3만에서 4만 명이고, 수도 아테네에서 민회가 열리면 해외에 나가 있거나 지방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1만 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한다. 데모스(민중)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가 실시됐다는 의미에서 아테네의 정치체제를 ‘데모크라티아’라고 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조건은 유권자가 수준 높은 판단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그럴만한 자격을 갖고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일자무식 시민들도 많았을 터여서 ‘우중정치’가 될 개연성이 높았다.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도 여전히 난제이니 2400여 년 전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론은 조변석개처럼 변하고 누군가의 선전 선동에 의해 한쪽으로 휩쓸리기 쉽다. 소극적 동조와 침묵도 여론이라는 이름 아래 뒤섞이고 목소리가 큰 누군가와 팔뚝 근육을 자랑하는 힘센 사람의 주도권으로 여론은 왜곡되기도 한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 단편적인 지식, 거짓 뉴스에 여론은 비틀리고 꼬이며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기도 한다. 이처럼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어떻게 조사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여론조사 향배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민한 주제이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패가망신할 수도 있는 병역문제, 그것도 가수 방탄소년단(BTS)의 군입대 문제를 결정짓겠다는 용감한 발언이 국방장관의 입에서 나와 논란이 일파만파다.
가수 방탄소년단(BTS)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대중음악 스타라는 데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BTS는 팝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각종 음악 차트를 휩쓸고 전세계 아미(ARMY)의 열렬한 지지 속에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슈퍼스타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와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을 높인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상품이다.
이 때문에 BTS의 존재와 가치를 국가이익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들이 이룬 성취에 대한 보답과 앞으로도 더욱 국익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바람이 그것이다. 그런데 장벽이 있다. 바로 이들의 병역문제다. 나이가 차면 병역을 이행해야 하는 것이 모든 한국 남성들의 의무이고, BTS 멤버들이라고 해서 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BTS 병역특례 부분을 국민 여론조사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의 질의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회의 때 제가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빨리 데드라인(기한)을 정해놓고 그 안에 결론을 내리고 여론조사를 빨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방장관의 여론조사 발언은 즉각 국방부가 BTS 병역특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자 국방부는 3시간 뒤 “장관의 발언은 여론조사가 필요한지 검토하라는 지시였다”며 “여론조사 결과는 정책 결정에 참고만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래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다시 해명하고 나섰다. “국민의 뜻이 어떤지 보겠다는 취지다. BTS 여론조사의 실시 여부나 BTS 병역 특례에 여론조사를 어떻게 반영할지 구체화한 것은 없다. 만약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 공정성 담보를 위해 국방부 등 관계부처가 아닌 제3기관에서 실시하겠다. 여론조사 결과는 다른 여러 고려 요소와 함께 정책 결정을 위한 하나의 자료로 참고할 것이다.”
예술 체육요원 병역특례는 병역법 시행령 68조11항에 규정돼 있다. 예술요원은 국제예술대회 2위 이상 성적, 국제대회 없는 국내대회 1위 성적,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자 등이며, 체육요원은 올림픽 3위 이상 성적, 아시아경기 1위 성적 등이다. 성일종 의원실에 따르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분야의 국내외 콩쿠르 대회가 42개나 된다고 한다. BTS의 병역특례가 논란의 초점이 된 것은 대중문화 분야는 이 가운데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다.
BTS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주자는 측의 주장은 이렇다. 대표적인 이가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성일종 의원이다. “그래미어워드 아메리칸뮤직어워드 빌보드어워드 같은 경우는 국가의 브랜드를 굉장히 끌어올린거다. 옛날에 (예술분야 병역특례) 42개 기준을 잡을 때 우리 청년들이 아메리칸뮤직어워드 빌보드어워드 이런 데 가서 우승하리라고 상상을 못했던거다. (BTS가 빌보드차트에서) 휩쓸었는데 경제적 환산 가치로 56조 원이 넘는다. 올림픽에 가서 금메달을 따면 2690억 원의 경제 유발 효과가 있다. 빌보드에서 한 주 우승하면 1조 7000억 원 효과가 있다. 저희가 바라보는 것은 국익적 측면에서 보자는 거다. 국가가 공정하게 운영해서 똑같은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지 어느 한 음악인들만 빼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BTS의 병역특례가 현 정부에서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주장했고, 박양우, 황희 문화체육부 장관은 잇따라 찬성 입장을 밝혔다. 특히 황희 장관은 지난 5월 “퇴임을 앞둔 제가 지금 이야기 하지 않고 다음 정권에 이 사안을 넘긴다는 것은 비겁하다고 판단했다”고 브리핑 배경을 설명하며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반대여론이 무서워 회피하고 싶다 않다”며 BTS 등 대중문화예술인의 예술요원 편입을 호소했다. 황 장관은 “대중문화예술인은 국위선양 업적이 뚜렷함에도 병역의무이행으로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자 전 인류의 문화적 손실”이라며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배려를 부탁했다.
물론 반대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BTS가 대중예술로 국위를 선양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청년이나 농사짓는 청년, 방산업체에서 근무하는 청년도 다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올림픽이나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것과 대중예술로 국위선양을 하는 것은 차원이 조금 다르다. 올림픽이나 국제예술경연대회의 우수한 성적도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영광이나 이익을 주겠지만 준비과정 자체가 공적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국가를 대표해서 국위를 선양하기 위한 동기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BTS는 국위선양이라는 결과는 가져왔지만 동기 자체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 아니냐? 앞으로 누군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장래도 보장되는 학자 기업인 발명가 등이 나올 때마다 병역특례를 줘야 하느냐?”
BTS에게 병역 특례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은 길이 분명히 나와 있다. 병역법을 바꾸고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이다. 병역법의 병역특례 대상에 대중문화예술인을 포함시키면서 대중문화예술인과 체육인 병역의무 이행 연령을 현행 30세에서 3~4년 더 늘리고, 시행령의 ‘예술 체육 특기 보유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은 예술 체육요원 편입이 가능’하는 범위에 역시 대중문화예술인을 포함시키면 되는 일이다. 만약 이와 반대로 현행 법과 시행령대로 대중문화예술인은 제외할 의향이면 분명하게 반대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나 국회의원들이 문제를 책임있게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외곽을 때리는 방법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사달이 나는 것이다. 그게 여론조사를 핑계로 따가운 국민들의 눈초리를 피하고 책임회피를 하려는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자들의 자세로서는 비겁한 태도다.
병역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은 대원칙이다. 이 대원칙 아래 입영 연기, 병역 특례 범위 확대 등을 어떤 수준에서 넓히고 포함시킬 지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분란의 씨앗을 남겨서는 안된다. 결코 여론조사라는 외곽을 때리는 꼼수로 병역문제를 접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