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상식 벗어나는 인간관계, 처세술 등 비관론이지만 현 시대에 맞아 떨어져
요즘 출판계에는 이 사람이 대세다. 이 사람을 주제로 한 책이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2023, 페이지 2북스)는 어느새 4달 넘게 주요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바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유명한 그는 키르케고르와 더불어 대표적인 염세주의자로 꼽힌다. 그가 평생 주장했던 ‘살아있는 것은 고통이요 죽음만이 해방의 길’이라는 이론은 수많은 지식인을 극단적 선택의 길로 이끌었다. 이 때문에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이들의 기피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랬던 그가 현시점에 왜 많은 이들로부터 다시 소환되는 걸까.
쇼펜하우어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하석진이 소개하면서다. 대개 이런 경우 반짝인기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쇼펜하우어 인기는 해를 넘겨서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교보문고 베스트 셀러 담담 김현정 씨는 "철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10년만"이라며 "쇼펜하우어 관련서는 짧은 말로 이뤄진 데다가 자기 계발적인 요소도 강해 현재 트렌드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볼 수 없다. 그는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발 하나만 떼면 늘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타인에게서 위안을 찾고자 하지만, 타인은 또 다른 아픔을 가져다줄 뿐”이라며 타인과의 거리 두기를 제안한다.
쇼펜하우어에게서는 자기 계발서와 명상 서적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타인에게서 위안을 찾고자 하지만, 타인은 또 다른 아픔을 가져다줄 뿐이다’ 즉, 인간은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타자들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제안한다.
쇼펜하우어 열풍에 마냥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 H(58,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쇼펜하우어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는 그만큼 과거에 비해 병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이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쇼펜하우어가 지나치게 미화되는 현상이 우려된다”며 “주변의 교사나 부모의 적절한 독서 지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