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입증책임 전환 납득 못해…항소”
언론, 법리 되새기며 언론윤리 추구할 때
“‘바이든 vs 날리면’ 논란, MBC 정정보도하라”, 윤석열 대통령 미국 방문 당시 MBC 보도와 관련, 최근 법원이 내린 판결이다. 해당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MBC 패소’로 결론 낸 이유는 분명하다. 재판부는 MBC에 논란의 발언을 입증할 책임을 요구, "MBC가 보도 근거로 삼은 자료는 신뢰할 수 없거나 그 증거가치가 현저히 부족하다"며 “해당 보도를 허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MBC는 항소키로 했다. 외교부는 대통령 발언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를 할 정당한 법적 이익이 없으며, 재판 과정에서 MBC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제대로 입증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판결에 대한 반응 역시 양쪽으로 나뉜다. 언론·언론단체, 정치권까지 나서서 언론자유 침해 우려를 들어 판결을 비판하거나, MBC의 오보 책임을 인정할 것을 권하고 있다.
판결의 핵심 쟁점은 2가지다. 언론보도 소송에서 왜 피고(MBC)에게 사실확인 책임을 지우는지(입증책임 전환), 대통령의 발언에 외교부가 정정보도 소송을 낼 자격이 있는지(당사자적격) 의 문제다. 논란의 전개 과정을 보면, 더러는 판결에 나타난 관련 법리에의 이해가 부족, 반박의 설득력을 잃거나, 언론윤리 차원에서 보도의 정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드러난다.
우선 헌법정신대로라면, 개인의 명예보호를 이유로 언론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 없다. 지금처럼 언론보도에 따른 공인(公人)의 명예까지 폭넓게 보호하려 할 때, 언론은 무력해지고 언론자유는 제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지금의 입증책임 전환 법리는 한국 법원에서 오랫동안 확립해 온 기준이다. 그 기준에 대한 판례 비판 혹은 판례 변경의 논의가 필요하나, 오늘의 언론환경 속 ‘사회외의 소통’에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나아가, 언론보도의 정확성 문제는 법적 다툼 이전에, 언론 스스로 선언하고 추구하는 존재이유이며 핵심가치다. 한국 방송은 윤리강령에서, 그 정확성의 설명 책임을 선언하고 있기도 하다. 누가 보도의 정확성을 문제 삼을 때 사실의 검증 과정을 설명하는 대신 그저 ‘언론자유’만을 주장한다? 그건 저널리즘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 언론의 책임 있는 자세일 순 없다. 이번 논란이 굳이 법적 다툼으로 간 데 대한 아쉬움은, 그래서 크다.
1. 언론자유와 명예보호의 두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 같은 언론내적 요인과 법 운용에 따른 법원-언론의 갈등 같은 언론외적 요인 탓이다. 법원은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며 개인의 명예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반면,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법 조항의 면책사유를 폭넓게 해석하려는 것이다. 지난 정부 때는 권력이 공직자의 명예보호를 내세워 언론자유를 가로막는, 새로운 형태의 언론탄압을 시도한 예도 있었고.
언론보도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은 날로 높다. 언론의 적극적 보도활동이 보다 필요한 시대, 그 보도의 영향이 큰 만큼 명예훼손 같은 갈등을 빚을 우려는 크다. 그러나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본다면, 그 명예 보호를 이유로 언론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할 순 없다. 언론법제가 언론보도에 따른 명예훼손 등을 엄벌하되, 위법성 조각사유(違法性 阻却事由)로 그 책임을 면하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곧 언론보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면책사유’를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보도의 진실성(정확성)-공익성(공공성)이다. 판례는 그 영역을 확장,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사유’(상당성)까지 인정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그 면책사유를 누가 입증할 것인가이다. 한국 법제로는 피고(피고인)의 책임이다. ‘…믿을만한 상당한 사유’ 같은 ‘내적 판단’ 영역도 고려, “면책사유가 있다는 점의 입증책임은 언론사에 있다”는 것이다.
2. 미국은 언론보도에 의한 공인(公人)의 명예훼손에선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명예훼손이 있더라도 피고(언론)에게 ‘현실적 악의’가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보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의 원칙이다. 초점은 두 가지다. 공직자의 공적 활동에 대한 비판은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로 인정받아야 하고, 공적 문제에 관한 선의의 표현은 그것이 (일부)허위라 하더라도 고의·과실이 없는 한 보호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 법리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그간의 논란 과정을 보면, *MBC는 대통령 발언을 “국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며 자막을 넣어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그 부분을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언론중재 과정의 정정보도 청구를 거부당하자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보도 내용을 명확히 입증할 것’을 MBC에 요구했다. *전문가는 해당 부분 ‘감정 불가’ 의견을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MBC는 보도의 ‘진실성’(정확성)을 추구한 노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과 검증의 규율에 소홀한 형태다. MBC는 보도를 "MBC 기자의 양심뿐 아니라 현장 전체 기자단의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고 항변하나, 그건 언론현장의 주장일 순 있어도 법제 속의 논리일 순 없다. 법리상 면책사유, 그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MBC는 입증책임 전환 부분에 특히 반발하며, "기존 법리대로라면 원고(외교부)에게 허위성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나, 그건 법리를 오해한 결과다. 언론소송에서의 입증책임 전환 법리는 오래전부터 확고하다. 이 부분, ‘유례가 없다’거나, ‘법리적 납득 어렵다’는 반응 역시 ‘사회와의 소통’면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3. 언론은 법제를 뛰어넘는 수준의 윤리도 준수해야 한다. 한국 기자사회는 연전, 보도·논평 종사자가 실천할 핵심원칙을 ‘‘언론윤리헌장’으로 다짐했다. 추락하는 한국 언론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기자사회가 새삼 시도한 자구(自求)노력이다. 헌장은 언론인의 목표·과제 9개 원칙을 명시했다. 진실 추구, 투명한 보도와 책임 있는 설명, 공정 보도 등이다. 그 공통적 키워드는 진실보도(정확성)·공정보도(공정성)다.
이번 MBC 보도는 저널리즘의 본질, 그 ‘진실 추구’를 위한 검증의 규율에 허술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정확성․공정성 추구, 그건 언론윤리의 핵심가치 아니던가. 존재하지 않은 것을 덧붙이지 말라, 방법과 동기에 관해 가능한 한 투명하라…. 그 규율의 우뚝한 신조는 “절대로 조작하지 말라”는 것이다(빌 코바치, 저널리즘의 기본요소). 그 저널리즘 철학은 언론의 본질 앞에서 더 이상 명쾌할 수 없다.
한국기자협회는 일찍부터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진 최일선 핵심존재로서, 어떤 직종의 종사자보다 투철한 직업윤리가 필요하다는 행동기준이다. 방송기자연합회의 강령도있다. “취재와 보도는 무엇보다 정확해야 하며, (…)완전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전문 아래, 세부 행동지침과 기준을 정하고 있다.
(정확하고 완전한 취재 보도)우리는 충분한 사실 확인을 거친 사안만 보도하며, (…)취재 내용이 불분명할 때는 충분한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보도를 미룬다. (정직하고 책임 있는 취재 보도)주관적인 의견을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는다, 보도 내용에 이견이 제기되거나 오해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인 설명을 할 책임을 진다. 이쯤에서, MBC는 자문해야 한다. 스스로 우리 언론 법제와 윤리 앞에, 검증의 규율과 취재강령 앞에, 정녕 당당한가를.
4. 기억하는가? 문재인 정부 말기, 정부․여당이 ‘언론개혁’의 이름으로 집요하게 추구한 ‘언론중재법’ 개정 파동을. 언론보도에 징벌적 배상을 물리려는 그 ‘언론악법’,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보 통제의 한 양상이다. 그 언론자유 억압 악법을 끝내 좌초시킨 것, 그건 '언론자유 보호'에 대한 시대적 결의 아래, 언론계가 모처럼 단합하고 다수 국민이 반발한 결실이다.
그 개정안을 밀어붙인 민주당의 발의 이유를 기억하는가? "최근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데 81%의 국민이 찬성할 정도로 언론보도 피해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이 높다", “'악의적 보도'로 피해를 당한 경우 피해자가 언론사에 (징벌적 의미의)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개정안,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엄격히 제한하는 자유언론 정신에 막혀 끝내 좌초했다.
‘현실적 악의’ 원칙 역시 오보 등의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지우는 대신, 피고에게 엄청난 물적 응징을 강제하는 법리다. 우리 법원은 그 원칙을 ‘독자적 견해’ 혹은 ‘독특한 판례이론’으로 평가하며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나라마다의 사회체제 및 언론제도 차이에 있다. 언론제도 간의 접근성 또는 차이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기능하고 있는 사회체제에 주목해야 한다.
이즘 한국 언론에 대한 평가는 날로 냉혹하다. 뉴스의 완성도며 저널리즘 행위의 윤리적 측면, 특히 언론의 정확성․공정성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 언론 스스로 저널리즘의 진실추구 원칙을 거스르며 불공정의 늪에 침몰한 자해적 행동 탓이 크다.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기본을 잃고 직업윤리를 망각하는 일탈에 빠져든다? 과연 그런 언론을 진정한 언론이라 할 수 있나?
우리 역시 언론소송의 기존 법리를 비판하고 보완토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언론은 그 논의를 법리적 논쟁에 근거한 공적 주제로 끌어올리기보다 법 현실이 지향할 당위론만 주로 강조하고 있다. 언론소송 관련 법적 쟁점은 아직 많다. 공인에의 명예훼손 인정은 어느 정도 어렵게 해야 할 것인지도 그 중 하나다(차용범,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사법적 논의의 한계, 한국언론학보 제45-2호,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판결기준의 변화 추세, 한국언론학보 46-2호 등).
한국 언론이 언론소송 법리를 ’언론자유의 확장‘ 쪽으로 끌어가려면 스스로 설득력 있는 근거를 부여하며 ’사회와의 소통‘에 성공해야 한다. 언론소송의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지울 수 있을 만큼, ’현실적 악의의 원칙‘도 수용할 만큼, 제 책임과 의무 앞에 충실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위기 속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핵심원칙을 되새겨야 한다. 언론 자유의 철학적 배경과 함께, 기자가 알아야 할 것과 독자가 기대하는 윤리적 원칙을 깨우쳐야 한다. 이쯤에서 언론은 되물어야 한다. 보도 과정에서 과연 진실을 추구한 검증의 규율에 충실했는가. 검증 대신 단정하고 사실 대신 조작한 것은 없는가? 우리가 언론자유의 확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번 'MBC 보도' 판결이 남긴 경고와 과제는 그만큼 엄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