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에서 PC방을 2년째 운영 중인 A 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인근 PC방들이 하나둘씩 요금을 인하해 자신의 가게도 가격을 내려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이 생겼기 때문이다. A 씨는 "다른 PC방들이 가격을 너무 내려 버리니까 부담이 많이 되죠. 손님을 잃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해야 할 것 같긴한데 계속 가다보면 다같이 죽을 겁니다"라고 울상을 지었다.
1987년 발표된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엔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이웃 주민끼리 서로 경쟁에 이기기 위해 지나친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벌인 건 양쪽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치킨 게임'이었다. 이 장면이 요즘 PC방 업계에서 다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인터넷에 부산 해운대구의 한 PC방의 요금이 1시간에 100원이라는 사진이 올라와 큰 논란이 됐다. 2015년에도 경기도 부천시와 경북 구미시에서 100원 요금 PC방을 목격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극단적 가격 경쟁의 산물이었던 '100원 PC방'은 최근 들어 대부분 자취를 감췄지만 PC방업계의 가격 인하 경쟁은 1시간 '500원'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부산 남구에서 7년째 PC방을 운영 중인 B 씨는 "PC방의 초저가 가격경쟁은 최근에도 여전합니다. 그야말로 극단적인 비이상적 박리다매인 이런 상황을 흔히 업계에서는 '500원 전쟁'이라고 하는데 인건비에 유료게임 로열티 지급에 임대료에 이것저것 나가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엔 모두가 함께 망할 것"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지나친 가격 경쟁이 끝내 비극을 낳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5년 10월 13일 자 MBC 뉴스에 따르면, 전주의 한 PC방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방화범은 인근 PC방 업주였는데, 그는 인근 PC방이 요금을 300원까지 내리는 것에 앙심을 품고 불을 질렀다고 보도되었다.
PC방 업주들은 이용요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내리고 있지만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어서 그 부담은 더 크다고 말하고 있다. B 씨는 "PC방이 처음 나올 때 당시엔 요금이 2,000원 안팎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싼 곳은 500원, 그렇지 않은 곳은 보통 1,000원 안팎이에요. 최근 전반적인 물가와 다른 서비스의 이용 요금은 계속 오르고 있는데, PC방 요금 추세는 거꾸로여서 더 힘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2016년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보다 1.0% 상승했고,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0.7% 상승한 데 반해, PC방 요금은 오히려 2.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나친 가격 경쟁의 시작에는 대형 PC방의 등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부산 경성대 인근의 PC방 연합회장 C 씨는 '500원 전쟁'이 계속되면 중소형 규모의 1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PC방부터 죽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C 씨는 "200대의 규모의 대형 PC방들은 요금 500원으로 운영해도 어느 정도 '박리다매'가 가능해요. 그런데 저희는 그냥 '박리'일 뿐입니다. 중소형은 '다매'가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요즘 대형PC방들은 여러 명이 공동투자 후 지분을 나누고 함께 운영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일반 평범한 PC방들은 싸움이 안되는 거죠. 지금 PC방 업계에는 지나친 과열경쟁이 아닌 서로 상생하는 자세가, 대형 PC방과 기존 매장이 서로 협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세청의 '생활밀접업종현황'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PC방 개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1만 4,212개이던 것이 2013년에는 1만 1,535개로 크게 감소했고, 2016년 중순에는 1만 463개까지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