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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는 전쟁 영화가 아니라 서스펜스 영화..."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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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는 전쟁 영화가 아니라 서스펜스 영화..."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섭다"
  • 부산광역시 황석영
  • 승인 2017.08.01 17: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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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광역시 황석영

<덩케르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의 기대치가 상승한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이란 말이 아까울 정도로 엄청난 천재다. 그는 같은 작품을 만들더라도 다른 느낌으로 연출하고 다양한 시각을 더한다. <다크나이트>, <메멘토>, <인셉션>에서 그는 세상에 대한 선입견을 깨어나갔다. 특히 기존의 히어로 물과는 달리 히어로를 가장 어둡고 현실적으로 표현한 <다크나이트>는 많은 영화팬들의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목록에 항상 들어있다. 그가 감독한 <덩케르크>라는 영화가 왔다. 영화관으로 안 달려갈 이유가 없었다.

<덩케르크>는 프랑스 북부의 항구 도시인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에게 쫓긴 영프 연합군이 영국으로 탈출하는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프랑스는 독일을 막기 위해 독프 국경 지대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하지만 독일의 강력한 공세로 방어선이 뚫리게 되고, 연합군은 끝없이 밀려 바다 말고는 갈 데가 없는 덩케르크 해변까지 오게 된다. 그리고 영프 연합군은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도주할 다이나모 작전을 준비한다. 이 때 해군 군함 한두 척이 수만의 군인들을 태워야 했고, 이들마저 멀리 가지 못하고 독일의 공격으로 침몰하고 만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국의 민간인 어선들이 연합군을 탈출시키러 덩케르크까지 온다. 이것을 두고 후세에 사람들은 ‘덩케르크의 작은 배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들은 영국 국민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의 상징이 됐다. 이게 다이나모 작전의 역사적 진실이다. 과연 놀란 감독은 이 사건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덩케르크 해변에서 탈출 대기 중인 연합군들의 모습. 실제 장면이 촬영된 것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놀란 감독은 영화 <덩케르크>를 전쟁 영화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서스펜스 영화라고 직접 말했다고 한다. 기존의 전쟁 영화 틀을 다 깨고 적들의 모습은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느 영화처럼 스토리가 아니라 사건이 영화를 이어간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이름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사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같다. 그리고 독일군들은 마치 자연 재해처럼 표현되어 있다. 해변에서 줄서서 탈출 차례를 기다리는 연합군에게 폭격기는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재앙처럼 느껴지고, 연합군은 그 넓고 광활한 해변에서 그 재앙에 처절하게 당하고 만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여기서 나는 제대로 깨달았다. 적이 없어도 언제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폭탄과 총알은 긴장을 넘어 생과 사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덩케르크>에서 그려지는 독일군은 절대적인 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연합군들의 내부 갈등이 더 큰 선악의 문제처럼 보인다. 놀란 감독은 인간의 생존 본능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을 소재로 선택한 듯하다.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른 부대원을 못 끼게 하는 이기적 부대원들, 같은 연합군이면서 프랑스군을 밀치고 영국군만 태우려는 영국 해군 함정, 죽은 영국군의 옷을 입고 영국 함정을 타려는 프랑스군 등...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벌어진 해변에 남아 있는 연합군 철모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인간의 이기심이 분출하는 사이에서 영화는 도리를 다하는 인간도 그려낸다.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민간 어선 선장과 연합군들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는 지휘관, 그리고 귀환할 연료가 없이 죽음을 불사한 영국 공군의 희생...

놀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메멘토>처럼 시간을 참 묘하게 그린다. 영화는 하루나 이틀의 시간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육군의 7일, 민간 선장의 1일, 그리고 공군 전투기의 1시간을 보여준다. 각각 다루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것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보인다. 육해공군이 같은 시간에 탈출의 몸부림을 치는 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시간인 듯하면서도 같은 시간에 탈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영화는 사연도 없고 대사도 적다. 그저 행동으로 모든 것이 그려진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 없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의 전쟁 영화의 틀을 깨고 <덩케르크>는 관객들이 마치 전장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 받을 수 있는 공포의 감정을 실감 있게 그렸다.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미 없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영화 <덩케르크>는 보면 볼수록 무언가 묵직하게 느끼는 게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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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 2017-08-02 13:16:06
오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수정했습니다.

오타다 2017-08-02 12:29:40
<메멘토>인데 <모멘토>라고 된 부분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