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병원의 전공의 폭행 사건은 구타로 얼룩진 1980년대 병영 문화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대학 부속병원은 전공의들의 수련 현장이기도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치유의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국립대학의 부속병원에서 벌어진 상습 폭력은 다른 어느 기관의 직장 내 폭력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중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직장 내 폭행이나 성폭행은 보통 지위의 높낮이에 따른 힘의 우열에서 빚어지게 마련이다. 이는 해당 조직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지위에 따른 권력의 남용을 조직이 묵인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을 경우 폭력이 똬리를 틀기 쉽다. 반면 수평적 조직 문화에서는 권한만큼의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폭력적 문화가 서식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어느 조직이든 리더십의 중요성이 곧잘 부각된다. 최근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앤드루 제이 힌치 감독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 크다. 월드시리즈 1차전 때 1번 타자 조지 스프링어가 4타수 4삼진을 당하자, 힌치 감독은 질책 대신 “그저 야구를 즐기면 그만”이라며 오히려 그를 격려했다. 그 덕분인지 스피링어는 시리즈 4차전부터 7차전까지 연속 홈런으로 보답했다. 큰 시합에서 버벅거리는 선수를 믿음으로 격려한 힌치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다. 프로 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은 기아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도 눈높이에 맞춘 ‘형님 리더십’으로 소통의 힘을 과시했다. 바야흐로 힘에 의존하는 리더십은 박물관에 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부산대병원의 사례를 보면 오랫동안 지도교수와 전공의 사이에 ‘제왕적 리더십’이 법처럼 군림하지 않았나 싶다. 폭력으로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고막이 터지고, 정강이와 무릎에 피멍이 들 정도였다면 교육이니 수련이니 하는 핑계는 설 자리가 없다. 물론 피해 전공의들이 가해 교수에 대해 선처를 바란다는 청원서를 제출하고,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긴 했다. 그러나 의사가 되려고 가슴에까지 피멍이 들었을 전공의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병원 측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엔 아직 이르다.
수련 현장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폭력의 관성이 일시에 멈추기는 힘들 것이다. 지난 4월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사협회의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전공의 1768명 중 20%가 “수련 중 신체적 폭행을 당한 적 있다”는 내용이다. 폭행 가해자 10명 중 1명은 교수나 상급 전공의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의 폭력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 이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인류학자 데이비스 플로이드는 지난 1987년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 12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이들 의사는 의과대학 재학시절에 출산의 기술적 모델을 산부인과의 핵심적인 가치로 습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모델은 신체를 일종의 기계로 다룬다. 의사들은 효과적인 생산과 질적 통제를 위해 조립라인형 접근 방식을 통해 출산을 관리한다. 목표는 건강한 아기의 출산이다. 이런 목표는 정교하고 복잡한 태아 모니터링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완성된다. 플로이드는 의과대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기술적 모델을 학습하고 받아들이는지에 집중했다.
인터뷰를 통해 플로이드는 세 가지 핵심적인 과정을 지적했다. 바로 의과대학생들이 수련과정에서 어쩔 수 없게 겪게 된다는 ‘신체 괴롭힘’과 ‘인지퇴행’, 그리고 ‘탈인간화’다.
신체 괴롭힘은 수면박탈에 의한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가혹한 의과대학의 통과의례다. 수련의 시절 내내 이뤄지는 신참 못살게 굴기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인지퇴행. 의과대학 수련 과정은 엄청난 분량의 지식과 정보를 암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 능력과 거리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적 과부하는 의학적 지식만을 최고로 여기는 좁은 안목을 갖게 한다. 종국에는 천편일률적인 유형으로 사회화시킨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탈인간화다. 의과대학 수련이 기술과 환자의 ‘대상화(對象化)’에 중점을 두는 바람에 인본주의적 이상을 놓아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 산부인과 전공의는 플로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인본주의적인 이상을 안고 의과대학에 들어왔다. 하지만 의학 교육의 전체 과정은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수련의가 될 때쯤이면 숙달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기술과 수행할 수 있는 실험이 얼마나 정교한가에 대한 관심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게 된다.”
무려 30년 전 미국 병원에서 지적된 수련의 문제가 하필 우리나라에서 재연된 걸까. 그것도 폭력을 띤 사회문제로. 부끄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강산이 세 번도 변했을 기간에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선 인술(仁術)의 전수는커녕 ‘수련(修練)’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활개치고 있었다니 믿기 어렵다.
병원 전공의들이 만성적인 폭력에 시달린다면 환자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는 5년 동안 폭력에 노출된 전공의가 장차 어떤 전문의가 될까. 폭력의 대물림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대리 수술 의혹으로 압수 수색까지 당한 병원 아닌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야 할 의과대학이 구태의연한 폭력적 도제(学生)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 임기응변식 대응이 아니라 사고와 제도의 혁파가 시급한 것 같다.
'전공의 1768명 중 20%가 “수련 중 신체적 폭행을 당한 적 있다”는 내용이다. 폭행 가해자 10명 중 1명은 교수나 상급 전공의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의 폭력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나머지 9명(90%)의 가해자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