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가 넘자 부산 역 안에 분주했던 승객들의 발걸음이 끊기기 시작한다. 상점들이 하나 둘씩 불을 끄고 문을 닫자, 밝았던 역 안이 어두워졌다. 그때, 몇 사람들이 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가 자신의 구역이라고 표시를 해놨는지 자연스럽게 기둥 뒷자리로 발걸음을 옮겨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종이박스를 머리끝까지 올린 채 그대로 눕는다. 몇 분이 지났을까. 청년 2명이 커다란 종이박스를 들고 부산역을 찾았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고, 나누고 베푸는 삶
“아이고야, 또 왔나. 우리 청년들 이래 고마워서 우짜노?”
고신대 기독교교육학과에 재학 중인 조민기(24) 씨는 부산역을 제 집 드나들 듯 자주 들린다. 덕분에 역에 가면, 두 팔 벌려 반겨주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조 씨는 대학교를 갓 입학한 20세 때 같은 과 선배이자 나눔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는 송주현 씨를 만나 노숙인을 돕기 시작했다. 마치 집들이 가듯 항상 양손을 무겁게 하고 부산역을 찾는 조 씨는 이번에는 두툼한 오리털 패딩을 준비했다. 조 씨는 “추운 겨울에 밖에서 주무시는데 저만 따뜻한 방안에서 잠들 수가 없다”며 “이렇게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반팔 차림이다. 춥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 씨는 몸에 열이 많아서 괜찮다며 활짝 웃었다.
나눔 커뮤니티는 노숙인들에게 옷, 음료, 식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한 때 노숙자였던 조헌제(78) 씨는 나눔 커뮤니티의 도움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남포동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던 조 씨는 나눔 커뮤니티에서 월세를 내주는 덕분에 따뜻한 여관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노숙생활로 몸이 불편해진 조헌제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조헌제 씨는 나눔 커뮤니티에서 후원하는 병원비로 치료를 받다가 작년에 숨을 거두었다.
조민기 씨는 “조 할아버지께서 항상 ‘천사’라고 나를 불러주셨는데, 떠나는 모습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 크다”며 “할아버지께 가는 날까지 제가 책임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날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멍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노숙인 분들을 더 열심히 찾아다니고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모여 만든 젊은 나눔 커뮤니티
조 씨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 현장 사진을 담아 SNS에 포스팅한다. 조 씨의 개인 SNS 친구 수는 2000명이 넘는다. 한 번 포스팅을 하면 몇 분 만에 몇 백 개의 '좋아요'가 눌려진다. 조 씨는 “SNS을 올리는 이유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며 “관심을 통해 도움의 손길이 늘어나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삶이 바뀔 뿐만 아니라 돕는 사람들의 인생까지 변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 씨는 “봉사활동을 SNS에 올리다 보면, 봉사를 통해 우리 젊은 청년들이 시간과 물질을 아껴 사회 소외계층 분들에게 봉사를 하고 있으니 박수라도 쳐달라는 거냐고 받아드리는 분들이 계실 수 도 있는데, 그것도 작은 관심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올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나눔 커뮤니티는 고신대학교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부산에 위치한 삼성여고, 부산관광고등학교, 성지고등학교 등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의 참여도 증가하고 있다.
세상이 바뀔거라는 생각 없어, 단지 노숙인, 고아원 친구들의 세상만큼은 바뀌길
조 씨의 하루는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노숙인들 뿐만 아니라 고아원과 독거노인을 찾아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학업까지 병행해야 하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르다. 조 씨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만큼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나눔 커뮤니티를 만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시고, 심지어 부산 역 근처에 조그마한 사무실까지 생겨 돈이 없어도 더 많이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 씨가 속한 나눔 커뮤니티는 기독교의 사랑을 전하는 청년 공동체, 나눔 문화 창출 및 확산을 목표로 하는 자비량 사역 팀이다. 조 씨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후원을 해달라는 마음은 전혀 없다”며 “우리들이 이 활동을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세상이 바뀔거라는 생각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한 귀퉁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우리의 선행을 받은 분들 만큼이라도 아직까지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노숙인들에게 점퍼를 나눠준 뒤 고아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조 씨는 “하지만 이런 마음들이 하나, 하나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이 바뀌어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보고 본받아야할점도 많은거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