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새벽 5시가 되면 부산 수영구 남천동 소재 중국집 삼천각 앞 공터에 어김없이 트럭 한 대가 나타난다. 짐칸의 천막을 걷어내자 큰 국밥 통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리 대기하던 사람들이 나란히 줄을 서더니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을 받아 들곤 길바닥에 놓인 플래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먹기 시작한다. 국밥을 다 먹은 손님들은 빈 그릇을 트럭 옆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자리를 뜬다.
"노숙자를 위한 무료 배식차인가?"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한다. 그렇지 않다. 이 트럭은 이래뵈도 손님으로부터 돈을 받고 국밥과 국수를 파는 어엿한 식당이다.
광안리 해수욕장 입구에서 주말에만 오픈하는 특별한 식당. 이 노점 식당은 원래는 매일 새벽마다 열었으나 2년 전부터는 주인의 사정으로 주말과 공휴일만 새벽 5시부터 10시까지 영업을 하며 시래기 국밥과 국수를 단돈 1000원에 판매한다. 요즘 세상에서 흔치 않은 노점 식당이다.
지난 2008년 8월 부산일보가 보도한 이후 웬만한 부산 시민이라면 다 아는 '명소'가 됐다. 신문 제목에 따라 ‘천원의 행복’ 국밥집이라 불린다. 손님들은 1000원만 내면 시래기 국밥과 국수를 실컷 먹을 수 있다. 인근의 주민, 홀몸 노인, 택시기사 등이 주 손님들로 하루 평균 500명일 정도 찾는다.
이 노점 식당을 13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도숙(58) 씨는 국가 연금도 받지 못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홀몸 노인들을 위해 가격을 1000원으로 매기게 됐다고 말한다. 어려운 사람이 계속 찾아오는 바람에 장사를 그만두지 못해 벌써 10년 하고도 3년이 더 지났다. 김씨는 “100원 짜리 동전을 모아 밥 사 드시는 노인분들 보면 세상엔 아직도 1000원 짜리 밥 한 그릇 사서 먹기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지난 2일 한 할머니가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리다 한꺼번에 하루 세끼 치 국밥을 3000원을 주고 샀다. 허리가 거의 90도 각도까지 굽은 이 할머니는 김 씨가 비닐에 밥과 국을 양껏 더 담아주자, 땀 흘리는 김 씨에게 살랑살랑 부채질을 해준다. 김 씨는 “이렇게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13년 동안 장사할 수 있었다”고 흐뭇해했다.
김 씨는 1000원 짜리 국밥이지만 맛만큼은 제대로 내야 한다는 일념에 직접 시래기를 사서 말리고 들기름까지 손수 짜서 쓴다. 김 씨는 그 덕에 주말 이틀 반짝 영업을 위해 일주일 내내 식당 음식을 준비한다. 과연 단돈 1000원으로 재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계산을 안 해봐가 모르겠는데예”라며 “이거 하면서 돈 계산하면 운영 몬 하지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옆에서 국밥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한 단골 손님은 “당연히 손해나지. 1000원으로 해가 얼마나 번다꼬”라고 덧붙인다.
쉴 틈 없이 몰려드는 손님이 잠시 뜸한 사이에 흐르는 땀을 수건에 닦아내며 김 씨는 한숨을 돌린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다섯 시간 넘게 트럭 뒤에 앉아 쉴 새 없이 국밥과 국수를 퍼주던 김 씨의 손은 밥풀과 국수 찌꺼기 범벅이다. 김 씨는 “밥장사하는데 정작 내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니까”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김 씨는 다행히 ‘천원의 행복’ 국밥집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서 그녀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 숨 돌릴 틈이 생겼다. 특히 돈 계산을 전담해 도와주고 있는 김효열 씨에게 김 씨는 각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효열 씨는 김도숙 씨와 아무 연고도 없이 신문 기사를 보고 돕겠다고 찾아와 일손을 도와주고 있다. 김효열 씨는 “내가 뭐 하는 일이 있나. 힘든 건 우리 김도숙 씨지”라며 김도숙 씨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천원의 행복’ 국밥집에 힘든 일도 많았다. 중국집 삼천각 주인의 배려로 가게 앞 공간에 노점을 열어 국밥을 팔고 있지만, 주변 식당들의 신고 때문에 구청에서 단속이 떠 도망 다니고 쫓겨난 적도 많았다. 그녀는 그때마다 손님들이 합심해서 미처 트럭에 싣지 못한 물품들을 대신 숨겨주기도 해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노점 식당은 여러 서민들의 응원으로 버텨나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단골손님은 ‘천원의 행복’ 국밥집은 다른 노점들과 달리 이익을 위한 장사가 아니니까 단속을 하지 말아 달라고 구청에 전화로 청원하기도 했단다. 구청에선 특정 노점에게만 편의를 봐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손님들이나 김 씨는 지금도 매번 단속이 뜨는지 경계하는 형편이지만, 망을 봐주는 손님들 덕분에 지금까지 ‘천원의 행복’ 국밥집이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천원의 행복’ 국밥집은 9월 18일을 마지막으로 더는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원래 매일 문을 열다가 주말에만 하게 된 것도 김 씨 남편의 암 투병 탓이었는데, 최근 남편의 상태가 안좋아져서, 그녀가 남편 간병에 전념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손님들은 “이제 주말에 밥 굶게 생겼네”라고 말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10년 넘게 단골손님이었다는 강신원 씨는 그동안 ‘천원의 행복’ 국밥집은 우리 사회에 진정한 나눔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알기로 이렇게 1000원으로 번 돈으로 주인이 3만 원, 5만 원씩 기부까지 한다고 들었는데, 부자가 백만 원 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거 아이가”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김 씨는 참 많은 손님들을 겪었다. 그중에서도 여섯 살 딸을 데리고 와 같이 맛있게 밥을 먹었던 가난한 아빠, 손주를 데리고 국밥을 먹던 할아버지, 5000원짜리 국밥보다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서민 단골들, 지금까지 노점을 찾았던 손님 모두 다 그녀에게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녀는 “이제 가게를 그만두게 되어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영업이 끝나 노점 식당을 정리하며 떠날 차비를 하는 김도숙 씨의 얼굴에는 쓸쓸하고 어두운 삶의 그림자가 비추이는 듯했다. 영업시간 끝 무렵에 찾아와 식사를 막 끝낸 손님들은 격려의 박수를 떠나가는 김 씨에게 마음으로 보내는 듯했지만, 그들 모습도 무거워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