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괴물이 마구 나를 쫓아온다. 아무리 도망가려고 발버둥 쳐도 발이 한 발짝도 꿈쩍 하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며 괴물에 잡히는 순간, 나는 온몸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자신이 꾼 악몽에서 깨어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악몽을 한두 번 꾸어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왜 그 무서운 상황에서 도망가지 못했는지 몸서리치는 그 밤의 악몽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 일부 중,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꿈을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일명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이 유행하고 있다. 선명하다는 뜻의 영어단어인 lucid를 사용하여 루시드 드림이라 불리는 이 현상을 한국말로는 ‘자각몽’이라 하며, ‘수면자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자각한 채 꿈을 꾸는 현상’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루시드 드림이 가능하다면, 악몽에서 나타난 괴물에 속절없이 쫓기고 잡아먹히기는커녕 단칼에 괴물을 퇴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부산의 대학생 박모(22) 씨는 루시드 드림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처음에 루시드 드림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인터넷에서 루시드 드림에 대한 정보와 후기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루시드 드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가 접한 루시드 드림 후기들은 “현실세계 같았다,” “무서웠다,” “재밌었다,” “신기했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설랬다”는 등 꿈에서 일어난 일들을 무용담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이런 후기들이 박 씨를 자극했고, 결국 박 씨 자신도 루시드 드림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박 씨는 루시드 드림을 소개하는 사이트에 나타난 지침대로 훈련을 거듭한 끝에 서서히 루시드 드림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순간, 꿈속에 제가 있고, 꿈속에 제가 있다는 것을 꿈속에서 제가 깨닫게 되니까 느낌이 이상했다. 굉장히 생생했는데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조금은 무서웠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실제 인터넷에는 박 씨의 말대로 루시드 드림을 꾸기 위한 훈련법이 소개돼 있다. 그 훈련법이란 것은 예를 들어 보통의 꿈을 꾸고 나고 일어나자마자 노트에 자신의 꿈을 최대한 길고 자세하게 기록한 후 이를 꿈에 적용하도록 반복 훈련을 한다는 식이다. 루시드 드림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카페와 책,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담을 소개하는 블로그 등에 나타나 있다. 이들에서는 각자의 경험담과 루시드 드림을 꾸는 방법, 주의할 점, 통제방법,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 등을 공유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세미나까지 열어 회원들끼리 주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루시드 드림 카페 회원 중 한 사람인 이모(22) 씨는 루시드 드림을 2년 차 꾸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 씨는 “많은 사람들이 자각몽 속이 현실과 똑 같으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얼마나 숙련했느냐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 여러 번 시도한 후에 익숙해지고 나서 자신의 꿈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재미를 느끼면서 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꿈에서는 할 수 있다는 점이 계속해서 시도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루시드 드림에 심취한 사람들은 꿈속에서 날 수도 있고 건물에서 떨어져도 살 수 있다고 증언한다. 단계가 심화되면, 심지어 이성과 애정행위를 나눌 수도 있고 그 느낌이 실제와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씨는 꿈에서 이성과의 애정행위를 하기 위해 루시드 드림을 꾸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귀띔했다.
심리전문가들은 암울한 현실에 좌절한 젊은이들이 현실도피 수단으로 루시드 드림을 이용할 가능성이 많고, 뇌가 스트레스를 받는 등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루시드 드림을 시도하다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려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부산의 고등학생 김모(18) 군은 “호기심으로 한번 시도해 봤는데 밤새도록 가위 눌린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로 김 군은 루시드 드림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루시드 드림이 현실도피 수단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서울에 사는 이모 씨는 자각몽이 오히려 현실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에서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데 심리적 두려움을 갖는 사람이 루시드 드림을 통해서 자신 있게 발표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면 일종의 자기 암시 효과가 되어 실제 현실에서 발표 시 두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게 이 씨의 논리였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루시드 드림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박모(50) 씨는 “그냥 자기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옛날에 떠돌던 괴담처럼 느껴진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쓸데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부산의 정신의학과 원장인 김모(52) 씨는 “루시드 드림을 꿨다는 경험담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현대 심리학에서 과학적인 객관성과 타당성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루시드 드림은 이를 뒷받침해줄 체계적 실험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무의식이나 꿈의 경우, 근거를 제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루시드 드림에 대한 여러 거짓 정보들도 넘쳐나고 있다.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억지로 루시드 드림을 꾸려고 잘못된 방법으로 훈련하다보면 정신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모(29) 씨는 한때 루시드 드림 카페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지금 그는 루시드 카페를 폐지했다. 그 이유는 루시드 드림의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박 씨는 “심할 경우, 자각몽을 꾸는 것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어 카페를 폐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