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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3년 1학기를 서면에 위치한 영어 학원에서 보냈다. 취업, 더 좋은 학업성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의 이유로 어학 성적을 내기 위해 휴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 성적은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초조하기에 충분했지만, 같이 휴학한 다른 친구들이 원하던 영어 성적을 올리고 복학을 기다린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심기일전하여 조금이라도 더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열공 대신 차동엽 신부가 지은 <희망의 귀환>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마음이 많이 지쳐서 사람이건 책이건 그 대상에 연연하지 않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책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한 이유에 대해 “이 바다 건너 지혜를, 지금 희망과 작별을 고하려 망설이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자 이 글을 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구를 보고 이 책이 나를 위해 쓰였음을 확신하고 책장을 서둘러 넘겼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해줄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론적으로 희망을 강요하고 무책임하게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왜 희망을 품어야 하고 어떻게 희망을 품을 수 있는지, 이 책은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나를 일깨워 줬다. 나는 저자의 희망에 관한 주장에 갸우뚱하였다가, 실제 사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으며, 글을 마무리 짓는 거장들의 한 마디에 내 가슴이 뜨거워지기 일쑤였다.
저자는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나와 같은 청춘들에게 “우리 먼저 가는 세대는 청년 자네들이 희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자네들은 되레 우리에게 희망이 어디 있느냐고 묻네그려. 청년의 펄펄 끓는 심장이 희망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놈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할꼬! 허허, 청춘이 우리에게 희망을 물으면, 우리는 이제 희망을 어디쯤에서 찾아야 할꼬!”라고 말했다. 그리고 19세기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그대에게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아군이 있지 않은가! 청춘이라는 벗이!”라는 말을 전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낙담을 하고 있던 나에게 저자의 이러한 메시지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절대 희망이 없다고 낙담해야 할 존재가 아니고 내가 희망 그 자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청춘이 우울증, 불안 증세를 겪고 현실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소식은 이제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지나가며 보게 되는 뉴스와 무심결에 읽는 신문 속에 그러한 소식들이 번번이 등장하는 것이 그 증거다.
많은 청춘이 심리적인 불안 상태에 놓이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고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이유들을 제쳐놓고 그들에게 놓치고 싶지 않은 희망,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희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저자는 나폴레옹이 만년에 모든 것을 잃고 남대서양에 떠 있는 외딴섬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어 있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나에게는 아직도 비장의 무기가 남아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청춘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희망 그 자체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희망을 잃어버린 채 절망 속에서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우리 청춘들에게 나폴레옹이 큰 소리로 꾸짖는 것 같이 다가왔다.
앞으로도 우리 청춘들에게는 숱한 역경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는 저자의 말처럼, 언제가 되었든, 우리 청춘들은 늘 희망을 부르고, 희망을 품기가 주저해질 때면 “희망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프랑스의 소설가 콜레트의 말을 우리의 가슴 속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