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뭐했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여자들”, “여자는 뽑지 말자”, “남자가 나서서 일하고 뒤에 숨어서 월급만 받아가는 기생충들.”
지난 21일 업데이트된 한 기사에 게재된 댓글들이다. 여성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쏠린 해당 기사는 다름 아닌 이날 충북 제천에서 발생한 화재 소식을 다룬 기사였다. 화재 진압 현장에서 여성 소방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비판의 시발점이다.
여성 소방공무원들을 향한 비판이 도를 넘어섰다. 사실과 다른 낭설을 근거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쏟아내며 여성 소방관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온라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남성 회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소방관이 여성 경찰과 함께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다.
한 네티즌은 “여자 소방관은 쓸 데가 없다. 소방관과 경찰은 무조건 남성으로만 뽑아야 한다”며 “인건비를 똑같이 들여서 돈 주는데 여성 공무원들은 가성비가 안 나오는 게 사실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글은 높은 추천수를 받아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하는 네티즌들이 많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소방관은 맡은 역할에 따라 구조, 구급, 경방으로 나뉜다. 화재 진압에 직접 나서는 소방관은 경방,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출하며 사체를 수습하는 소방관은 구조, 모든 상황에서 발생한 부상자를 상대하는 소방관은 구급 소방관으로 분류한다.
여성 소방관들은 주로 구급 소방관으로 많이 근무한다고 한다. 주취자, 노숙자부터 사고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를 관리하는 게 구급 소방관들의 임무다. 소방관이라고 하면 대개 화재 현장에서 호스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의외로 화재 출동은 업무 비중이 가장 적고, 구급 출동이 소방관 업무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많은 여자 소방관들이 맡은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떨어지는 듯 보인다. ‘소방관=화재 진압’이라는 일종의 선입견 때문이다. 실제로 소방관의 업무 내용에 대해 질문했을 때, 구급을 사례로 드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소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 대부분이 2교대 24시간 근무 체제로 운영됐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것이다. 엄청난 육체노동 강도에 대한 비판이 일자, 요즘은 3교대 근무 체제로 바뀌었다.
본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21주기 형태로 근무가 돌아간다. 주간 근무를 '주', 휴무를 '비', 야간 근무(야간 오후6~다음날 오전 9시)를 '야', 24시간 근무를 '당'으로 표시했을 때, 21주기 근무는 주주주주주비비 - 야비야비야비당 - 비야비야비당비의 3주 간격으로 근무가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소방서에서 2조 2교대나 3조 2교대를 시행하고 있다.
여자 소방관 김모(28) 씨는 온 다리가 멍투성이다. 야간 근무할 때마다 생기는 상처 때문이다. 야간 근무 시는 대개 주취자를 상대하게 되는데, 여자 소방관을 폭행하는 주취자가 한둘이 아니란다. 욕설에, 머리채를 잡히는 것도 예삿일이다.
하지만 정작 김 씨를 괴롭히는 것은 주취자 폭행이나 3교대 근무도 아닌 일부 대중의 속모를 비판이다. 김 씨는 “구급 현장에서는 정말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이런 일을 안전하게 수습하려고 구급 소방관이 있는 게 아니겠냐”며 “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출동 현장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끔씩 여자 소방관들이 하는 일이 뭐냐는 욕설을 들을 때면 온 몸에 힘이 쫙 빠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성 소방관 이모(41) 씨는 이 같은 논쟁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각자 맡은 임무가 다른데 성별 대결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설명이다. 이 씨는 “경방 소방관, 구조 소방관, 구급 소방관의 역할과 성격이 다르다. 어떤 직무에는 여성이, 또 다른 직무에는 남성이 적격일 수 있지 않겠나”라며 “모든 소방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