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삶의 뜻을 생각하는 은퇴인
2010년의 서울 여행 일정 중에 둘째, 그리고 셋째 동생 내외가 경북 울진군 북면에 있는 덕구 온천 관광호텔에서 2박 3일을 보내는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내외는 서울을 거쳐 대구 처가에 와 있었습니다. 우리 내외는 대구에서 포항을 거쳐 울진으로 280km 를 운전해서 덕구로 가고, 동생들은 서울에서 덕구로 직접 내려와 덕구 호텔에서 서로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동대구를 나가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나오는 20번 도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드문 신공법으로 만든 고속도로였습니다. 산이 막히면 굴을 뚫고, 농토나 마을을 지날 때는 육교다리를 놓아서, 도로의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이 수평을 이루면서 달리게 만든 이 고속도로는 한국의 뛰어난 도로 건설 기술을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포항에서 울진 가는 동해 해변 7번 도로 역시 경치도 좋고 도로의 표면도 매끄럽고 훌륭했습니다.
울진은 나에게는 낯선 곳이 아닙니다. 1961년 장면 정권 시절 국토개발요원으로 선발되어, 울진군 책임자로 2개월 간 파견되어 나가 있으면서 울진군의 모든 면들을 돌아보았고, 지금 크게 온천으로 개발된 온정면의 백암 온천도 몇 번이나 방문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머물던 울진여관 주변과 시내 가운데를 갈라서 흐르는 울진천과 다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시내에서 울진천 다리를 건너가기 전에 보성양복점이 있었고, 울진에 만난 여러 사람들의 정겹고 극진한 대접을 받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리를 건너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그 옛날 자취나 사람들을 찾을 수 없으니 이래서 인생이 무상하다고 하는가 봅니다.
우리 세 가족은 거의 같은 시간에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하고 바로 죽변항의 해물시장으로 갔습니다. 영덕 대게는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곳 울진 대게도 영덕 대게 못지 않게 맛있다고 해서 울진 대게는 물론 우럭 같은 좋은 생선회를 먹게 된다는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세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서 어선들이 모두 고기잡이를 나가지 못하고 정박하고 있는 상항이어서, 우럭은 횟집에 없었고, 우리는 겨우 게 한 상자와 3kg짜리 문어를 스팀으로 쪄서 호텔로 가지고 왔습니다.
둘째 동생이 준비한 묵은 김치, 싱싱한 채소, 그리고 소주를 깊은 산 속 호텔 베란다에서 마신다는 것은 꿈같은 정경입니다. 으리 형제들은 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주변 사람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둘째 날 새벽에, 우리 형제들은 이곳 호텔 지하에 있는 온천탕을 찾았습니다. 깨끗하고 시설이 잘 되어 고급스러워 보였으며, 이곳 온천물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하에서 올라오는 자연수 그대로 쓴다고 안내판에 적혀있었습니다. 유황이나 독한 냄새가 전혀 없는 맑은 물에 몸에 좋은 광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하는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온천욕을 즐겼습니다. 온천욕을 마치고 계획된 피크닉과 등산 코스를 가기 위해 우리는 온천 근처에 있는 응봉산과 그 산 중턱에 있는 불영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신라 진덕왕 5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불영사(佛影寺)는 부처님의 그림자라는 한자의 뜻대로 대웅전 서쪽 산 위에 부처를 닮은 부처 바위가 절 가운데의 연못에 비추어 불영사라고 전해 옵니다. 지금도 그 연못은 잘 가꾸어져 있었으며, 절 건물들은 모두 새로 지은 듯 번듯번듯했고, 그 중에 제일 큰 건물인 대웅전에는 누구의 명복을 49제가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이제는 스님들의 동안거가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스님들 수련 장소는 아직도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절에 한 번 와서 템플스테이 같은 이벤트를 이용해서 참선을 하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아직 한 번도 기회가 없었습니다.
명승 6호로 불리는 불영사 계곡은 가벼운 등산 코스였습니다. 계곡을 두루 돌아보고 내려오면서 물가에 평평한 바위를 찾아 피크닉 자리를 잡고 준비해온 삼겹살과 반찬으로 푸짐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산길을 내려와 어제 갔던 죽변항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이날 수산시장에는 전날과는 달리 자연산 우럭과 홍삼이 있어서, 우리 일행은 푸짐하게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우럭 회도 알려진 대로 훌륭하지만, 홍삼 역시 좋았습니다. 본래 홍삼은 날로 먹기는 너무 딱딱하고 질겼으나 제주도에서 배운 대로 펄펄 끓는 물에 잠깐 삶아서 먹으니 천하일미였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다시 옛날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셋째 날 아침 6시 반에 호텔에서 안내하는 등산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응봉산 위로 약 4km 정도 올라가 덕구 온천의 수원지 원탕이 있는 곳까지 다녀오는 코스였습니다. 약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등산은 우리에게는 좀 힘들었지만, 조그만 온천수가 뿜어 올라오는 신비한 분천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울진 여행을 마치고 대구로 돌아온 다음날, 나는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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