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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그림책을 통해서, 또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첫째 돼지는 지푸라기로 대충 집을 지었고, 둘째는 나무로 후다닥 집을 지었다. 늑대가 와서 첫째와 둘째가 지은 집을 거센 입김으로 날려버리고 이들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늑대는 힘들여 지은 막내의 벽돌집을 부수지 못하자 꾀를 내어 굴뚝으로 들어간다. 늑대의 꾀를 눈치 챈 막내돼지가 물을 끓여 부어 오히려 늑대를 죽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요즘 다양한 이야기로 발전하고 있다. 우선 페미니즘에 입각한 ‘아기돼지 세 자매’ 이야기가 있다. 좋은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 세 자매가 길을 떠난다. 첫째는 벽돌집을 샀지만, 늑대가 돈 많은 신랑감으로 변장해 첫째를 잡아먹는다. 둘째는 나무집을 지었다. 역시 늑대가 잘 생긴 신랑감으로 변장해 둘째를 잡아먹었다. 셋째는 오히려 자기가 늑대로 변장, 지푸라기 집으로 늑대를 유인해 사로잡았다. 늑대를 잡았다는 소문이 나자, 구혼하는 좋은 신랑감이 줄줄이 셋째를 찾아온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도 있다. 늑대가 할머니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려고 했는데, 마침 설탕이 떨어졌다. 그래서 설탕을 빌리러 갔다가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는 바람에 돼지 집이 날아갔고, 와중에 돼지가 죽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먹어치웠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늑대는 늑대의 입장에서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가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아기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못된 돼지가 나타나 아기늑대들이 지은 집을 마구 파괴시킨다는 이야기다. 벽돌집은 해머로 깨뜨리고, 콘크리트로 지은 집은 구멍 뚫는 기계를 가져와 부숴버린다. 철근과 강철판으로 만든 집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린다. 이 이야기는 늑대보다 훨씬 못된 돼지를 그리고 있다.
데이비드 와이즈너라는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최신 버전 <아기돼지 세 마리>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책이다. 첫째 돼지가 늑대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시점에, 갑자기 동화 속에서 뛰쳐나와 버린다. 둘째도 셋째도 차례로 동화에서 나와서 동화책으로 비행기를 접는다. 돼지들은 그 종이 비행기에 올라타고서는 세상 구경에 나선다. 그러다가 다른 동화책 속에 들어가 구출한 용(龍)과 함께 다시 본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는 늑대를 쫓아 버리고 행복하게 산다.
기왕 시작했으니, 하나만 더 소개하자. 모리 쓰요시가 글을 쓰고 안노 미쓰마사가 그림을 그린 <아기 돼지 세 마리>는 이야기책이 아니다. 수학 그림책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늑대의 이름은 소크라테스다. 그의 부인 크산티페가 배가 고프다고 얼른 먹을 것을 구해 오라고 남편에게 조른다. 그런데 아기 돼지는 세 마리인데, 집은 다섯 채가 있다. 늑대 소크라테스는 개구리 피타고라스와 함께 어느 집에 돼지가 있을지 복잡한 ‘경우의 수’를 풀어나간다. 아기돼지들이 어떤 집에 들어가 있는지를 계산하다보니 날이 훤하게 밝았다.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수학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학기 마지막 강의 시간에 대학생들에게 이들 그림책을 직접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열린 사고방식이다. 이들 책의 저자는 모두 외국 작가들이다.
갈수록 디지털 세상에 빠져 우리 젊은이들은 상상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특히 인터넷 검색과 스마트폰에 모든 것을 의존함으로써 단편적인 지식에만 매몰되어 가는 우리 모습을 한 번쯤 되돌아보자. 우리의 생각이 갈수록 단편화되고, 이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점점 극단화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조그마한 것을 알고서 전부를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상상력을 이야기로 만들어 파는 세상이다. 갈수록 중요해지는 ‘스토리텔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시인 안도현이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지식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