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 외 다른 시설 공유... "외로움 덜고 범죄 노출 가능성도 줄여"
남남인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방은 따로 쓰지만 한 집에 세 들어 살면서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는 미국 TV 시트콤 <Three's Company>가 1970년대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는 우리 문화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그렸지만, 미군방송이었던 공중파 TV 채널인 AFKN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돼, 영어 공부하려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제법 마니아들이 있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것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MBC에서 방영된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었다. 이 시트콤은 한 집에 남녀가 어울려 사는 상황을 그리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상을 보여줘서 국민 시트콤으로 시청자를 웃겼다.
70, 80년대의 하숙집을 몰아내고 원룸이 새롭운 대학가 주거 풍속도가 되더니, 또다시 새로운 주거 형태가 등장했다. 드디어 한국에도 미국의 <Three's Company>나 <남자 셋, 여자 셋>과 같은 주거 형태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에 사는 여대생 오동현(22) 씨는 가족이 아닌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동거 중이다. 동거하고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며 모두 같은 여성들이다. 침실은 각각 따로 쓰지만, 동거인들은 거실, 화장실, 부엌을 같이 사용한다. 일종의 한 지붕 세 가족인 셈이다. 요즘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이런 새로운 주거 형태는 원룸과 구분하여 '셰어 하우스(share house)'라 불린다. 셰어 하우스는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을 제외한 거실, 화장실, 부엌 등 공동 공간을 입주민이 함께 나눠 사용하는 주거 형태다.
오 씨가 셰어 하우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일반 원룸에 비해 가족과 같이 사는 듯한 친밀감과 요새처럼 험한 세상에 혼자 사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오 씨는 “아침에 늦잠 잘 때면 옆방 언니가 깨워주기도 하고, 음식도 나눠먹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 외롭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나눠 쓰는 집이란 의미인 셰어 하우스에 함께 사는 입주민은 하우스메이트(housemate)라 불린다. 함께 사는 사람이란 뜻인 하우스메이트는 국내에서는 셰어 하우스란 주거형태의 의미로도 통상 사용되기도 한다. 집세는 따로 내고, 관리비나 공과금은 입주민끼리 나눠 내는 대신, 답답한 원룸보다는 다소 넓은 거실 등을 공유하므로, 최근 20-30대 젊은 층들은 원룸만큼 셰어 하우스를 선호한다. 회사가 밀집된 곳이나 대학가 주변에서는 단독주택이나 방 2-3개를 가진 아파트 주인들이 셰어 하우스로 집을 임대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의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인근 대학가 주변의 원룸 크기는 대략 6평에서 8평 정도다. 보증금은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이며, 추가되는 월세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50만 원 사이를 오르내린다. 셰어 하우스의 경우, 주택 크기나 집 상태에 따라 가격은 다양하다. 상태가 좋은 집일 경우, 30평에서 40평 정도의 크기에 1인당 보증금은 대략 300만 원에 월세가 30만 원 정도여서 원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관리비가 많이 나오는 대신 입주민끼리 나눠 낼 수 있고, 가격 대비, 큰 집에 살 수 있다는 점이 셰어 하우스의 장점이다. 중개업자는 “여럿이 어울려 사는 것을 선호하는 대학생들이 주로 셰어 하우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1인 주거 형태인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선호한다. 그러나 원룸은 혼자 사는 주거 형태인 만큼 각종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셰어 하우스로 사용되는 아파트나 주택은 여럿이 모여 살므로 훨씬 안전할 수 있다.
셰어 하우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1인 가구가 많은 일본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Three's Company>처럼 미국에서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보편화된 주거 형태다. 울산에 사는 대학생 이태균(26) 씨는 대학 생활 중 토론토에서 10개월 정도 유학생활을 했다. 소위 셰어 하우스에서 그와 함께 생활했던 하우스메이트는 모두 다른 인종의 친구들이었다. 그는 “외국인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나라의 문화도 배울 수 있었고, 그래서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온 것이 제일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갈등을 겪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부산시 해운대구에 사는 대학생 신모(24) 씨는 1년 정도 셰어 하우스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함께 살던 입주자가 친구들을 자주 데려와 방에서 소란스레 떠드는 행동 때문에 신 씨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신 씨는 “결국 한마디도 못하고 내가 집을 옮겨버렸지만, 넓은 공간을 사용하는 대신 함께 산다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셰어 하우스는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임대 거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성별이나 신분을 속이고 다른 욕심을 갖고 계약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대연동의 중개업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한국적 정서를 고려하여 남녀를 함께 입주시키지는 않는 추세다. 그러나 문제는 주인이 아닌 세입자들이 하우스메이트를 찾는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동거인을 찾는다는 것이다.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대부분의 사이트는 여성 하우스메이트 전용, 남성 하우스메이트 전용, 성별 무관 하우스메이트로 나눠놓고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입주자를 찾는 글에는 동성이 아닌 이성도 상관없다는 글들도 쉽게 보인다. 심지어 남자가 여성 하우스메이트만 찾는다는 글도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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