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구가 함께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서 전기나 도시가스는 세대별로 계량기가 따로 설치돼 있지만, 수도계량기는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한 건물에 한 대만 달랑 설치돼 있어 세대 간 수도세를 나누는 문제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개의 다세대 주택은 세대별로 수도계량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건축 당시부터 수도배관을 세대별로 시설해야 하지만, 건물주가 건축 시 건축비가 많이 들어 수도계량기를 건물 전체에 단 하나만 설치하는 게 다반사다. 이로 인해, 하나의 수도계량기로 부과된 건물 전체의 수도세를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는 여러 세입자들이 분담해서 납부해야 한다. 이때, 세대별 수돗물 사용량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 세대수나 입주자수로 나누다 보니, 수돗물을 적게 쓰는 세대에서 불만이 나오게 마련이다.
네이버의 부동산 정보 전문 카페인 ‘오픈하우스’에 의하면, 세대별 수도계량기가 없는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수도세가 관리비에 포함돼 있고, 일반 다세대 주택은 전체 수도세를 세대 수로 나누어 계산하는 게 통례라고 소개돼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수도세를 분담하는 것이 수도 사용량에 따른 정확하고 공평한 계산법이 아니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수도세를 낼 때마다 찝찝함을 떨치기 어렵다.
회사원 김모(45, 부산시 동래구) 씨는 현재 세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2층 건물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건물에는 수도계량기가 한 대뿐이다. 출장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도 많고, 다른 가구에 비해 물을 훨씬 적게 쓰는 김 씨는 집주인이 달마다 전체 수도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부담하라고 해서 항상 손해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수도 요금을 낼 때마다 집주인과 얼굴을 붉히게 된다”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에서 수도세를 정확하게 분담하는 방법은 세대별로 수도계량기를 각각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수도계량기가 한 대만 설치되어 있는 다세대 주택이 가구별로 수도계량기를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에 의하면, 가구별로 수도계량기를 설치하려면, 공동 주택의 전체 입주자가 동시에 신청해야 하고, 세대별로 급수가 가능하도록 건물 자체의 배관이 이미 분리돼 있어야 한다. 또한 세대별로 12만 원 정도의 수도계량기 설치비용을 부담해야하며, 건물의 수도 배관 상태에 따라 인건비나 재료비 등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 건물 건축 당시의 수도 배관 상태에 따라서 아예 세대별 수도계량기 설치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세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건물에 세입자로 살고 있는 주부 정모(32, 부산시 동구) 씨는 주인집에서 사람 머릿수대로 나눈 수도세를 납부해왔다. 하지만 1만 2000원 정도였던 매달 수도세가 어느 달부터 3, 4만 원 정도 더 나와, 세대별 수도계량기 설치를 상수도사업본부에 문의했지만,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건축 당시의 건물 급수배관이 세대별로 분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씨는 “개별 수도계량기 설치가 불가능한 건물에 세 들어 살는 것도 그렇고, 내 집 없는 설움을 수도세를 낼 때마다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 소유주도 수도세로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여덟 가구가 함께 살고 있는 건물을 갖고 있는 박모(47, 부산시 북구) 씨는 한 대의 수도계량기로 부과된 수도세를 건물에 살고 있는 각 세대의 사람수로 나눠 수도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수도세 문제로 늘 세입자들의 불만을 들어야 한다. 박 씨는 “수도세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해결책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상수도사업본부가 시공해주는 세대별 수도계량기를 설치할 수 없는 건물에는 세대별로 사설 수도계량기를 설치해 각각의 수도 사용량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사설 수도계량기는 철물점에서 2만원 안팎으로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배관 시공 업체에 4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의 공사비를 지불해야 한다. 2층짜리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는 주부 하모(49, 부산시 강서구) 씨는 자신의 집에 사설 수도계량기를 설치하려고 공사비를 근처 시공업체에 문의한 결과, 건물 크기나 구조, 그리고 배관 상태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어서 많게는 추가로 몇 백만 원이 더 들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사설 수도계량기가 설치돼도 세입자들 간 수도세 분쟁을 해결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하 씨는 “사설 수도계량기로 재는 수도 사용량이 정확하지 않고, 계산 오류가 날 때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용도 비싸서 사설 수도계량기 설치를 포기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