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정서 학대 받은 아이들 뇌 신경회로에 이상 소견"...부모 27.6%가 자녀 학대 / 조윤화 기자
대학교 3학년 김모(22, 부산시 금정구) 씨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언어적 폭력을 견디며 살아 왔다. 김 씨는 “가끔 실수로 화장실 불 끄는 것을 깜빡하면 곧바로 ’네 뇌는 지방밖에 안 들어서 화장실 불 끄는 것도 깜빡한다‘는 이버지의 폭언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몇 살인지 기억도 못 할 만큼 어렸을 적엔 아버지로부터 '너 같은 걸 낳을 바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지워 버릴 걸 그랬다’는 말까지 들어봤다”고 밝혔다.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언어 폭력은 김 씨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김 씨는 “가족애를 강조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안 본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부모가 자녀를 안고 있거나 깊은 가족애를 강조하는 장면을 볼 때면 애틋함보다는 가증스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절로 피하게 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 씨는 지금도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처럼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 김 씨는 “주위 친구들이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가끔 부럽기도 하지만,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될 수 있으면 부모님과 대화를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폭언, 협박과 같은 정서적 폭력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정 폭력의 유형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자녀를 둔 응답자 중 27.6%가 최근 1년간 자녀를 학대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자녀 학대 유형별로는 자녀에 대한 ‘정서적 학대’가 25.7%로 ‘신체적 학대(7.3%)’ ‘방임(2.1%)’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결과를 보였다. 해당 조사에서는 정서적 학대를 ‘자녀를 때리겠다고 위협하는 것’과 ‘자녀에게 욕을 하거나 나쁜 말을 퍼붓는 것’으로 규정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정서적 학대는 자녀의 뇌에 물리적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어릴 적 상처 평생 간다’는 게시글에서 “언어 폭력은 발달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깊은 후유증을 남긴다”고 말했다. 이어 “유아기에 부모에게 언어적 학대를 당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나고, 뇌 구조가 변형될 확률이 증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최지욱 교수는 2016년경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신 뇌 영상 도구를 이용해 살펴본 결과, 부모의 언어적 학대 등 정서적 학대 경험은 자녀의 뇌 신경 회로 발달에 이상 소견을 보인다”고 밝혔다. 언어 표현과 이해를 담당하는 신경 회로가 일반인의 경우 굵고 단단하게 연결돼 있지만,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집단의 경우 신경회로가 좁거나 약해서 끊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
한편, 현행법은 아동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한 이에게 신체적 학대를 가한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처벌할 것을 적시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제17조 및 제71조 1항 2호에 따르면,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를 한 사람과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사람은 동일하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