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무인 시스템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패스트푸드나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무인 주문기를 도입하는가 하면, 점원이 아예 없는 무인 편의점도 속속 생기고 있다. 직원이 필요 없는 코인 노래방도 그 중 하나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소비자 스스로 결제할 수 있도록 자동화 기계를 들여놓는 것이다.
주유소도 예외는 아니다. 가격 경쟁이 치열한 업종인 만큼 인건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주유소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대표 업종 중 하나다.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유류를 들여와 유통 마진에서 이익을 남긴다. 마진에서 인건비와 세금, 임대료, 카드 수수료를 제한 돈이 순이익이 되는 셈인데, 사실상 인건비를 제외하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이에 많은 주유소들이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고 있다. 셀프 주유소는 운전자가 차량에서 내려 직접 주유기를 작동, 결제까지 하는 주유소다. 관리 인력 외에는 별다른 직원이 필요 없다.
부산의 한 주유소도 올 초 직원 여섯 명을 내보내고 셀프 주유기 4대를 갖춘 셀프 주유소로 전환했다. 기계는 이곳의 사장 이모 씨와 그의 아들이 번갈아 관리한다. 셀프 주유기 기계값은 약 2000만 원대. 일반 주유기의 2~3배에 달하지만, 이 씨는 셀프 주유기를 들이는 게 장기적으로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셀프 주유소 전환에 들어간 금액은 약 1억 1000만 원 남짓인데, 여섯 명 직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면 1년에 1억 원 가까이 든다고 한다. 1년간 인건비로 나가는 지출을 줄이면 기곗값 회수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는 “아들과 교대로 일하면서 몸이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며 “주유소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데 인건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내년에는 더 오를 것 아니냐. 하루 빨리 무인 시스템으로 바꾸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셀프주유소는 2813개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주유소 1만 1807개 중 24%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셀프 주유소로 전환한 주유소는 525곳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 동기 대비 11배 늘어난 것이다.
주유소협회는 내년에 1000개 이상의 주유소가 셀프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협회 측은 “주유소에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요소가 인건비밖에 없다”며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셀프 주유소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내년에는 최소 1000개의 주유소가 (셀프 주유소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비용이다. 셀프 주유기를 들일 여력이 없는 주유소는 직원을 줄이지도, 기계를 들일 수도 없는 진퇴양난 상황에 빠졌다. 한 주유소 사장은 직원 3명을 2명으로 줄이고, 아내 손을 빌리게 됐다. 영업시간도 24시간에서 18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자금난.’ 그는 셀프 주유기의 가격이 부담돼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야간에 직원 쓰면 그만큼 돈이 나가고, 그렇다고 셀프 주유소로 바꾸려고 해도 지금 당장 돈이 없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몇 억 가까이 되는 돈이 어디서 나오냐”며 “자꾸 경쟁도 심해지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폐업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업계에서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한 요구가 나온다. 주유소 경영이 인건비에 많은 영향을 받고 근로자의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업종인 만큼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관계자는 “근로자 최저임금 인상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부담하는 자영업자의 입장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주유소는 인건비에 민감한 업종일 수밖에 없는데 대책이 하나도 없다”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어렵다면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는 데 보조금을 지원하든지, 아니면 유통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는 방법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주유소는 모두 다 굶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