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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중국의 6세대 영화감독 ‘지아장커’는 <스틸 라이프>라는 작품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다. 이를 기점으로 지아장커 감독은 현대의 중국 사회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기를 좋아하는 왕 샤오슈아이나 장 위엔 감독과 함께 6세대 영화감독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2014년 3월, 지아장커는 전작과 다름없이 중국의 실제 모습을 다룬 <천주정(天一定会)>을 공개한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과 사건묘사와 표현의 구조적 형식 등이 다소 달랐으나, 여전히 다시 한 번 세계 영화계의 주목받았다. 과연 <천주정>은 어떤 작품일까.
영화 <천주정>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듯하지만 이어지는 4개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매일 "내 언젠가 촌장과 쟈오셩리를 베이징 기율 위원회에 다 고발할거야"라고 말할 뿐 특별히 직업도 없고 하는 일도 없는 백수 따하이, 어느 날 우연찮게 따하이의 옆을 지나친 남자이자 돈을 위해서라면 백주대낮의 살인도 마다않는 조우산, 조우산과 우연히 버스를 같이 탄 남자의 내연녀이자 성매매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우나의 카운터 직원 샤오위, 성매매 업소에서 근무하다 만난 동료와의 사랑에 실패하고 그가 송금하는 돈에만 관심이 있는 가족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샤오후이 등이 등장한다. 네 사람 모두 소농공 출신으로 타지를 떠돌며 힘든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인물이다.
<천주정>이 ‘다른 인물들로 된 짧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이어진 여러 개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방식’인 옴니버스 구조를 선택한 것이 이 영화의 스타일을 더 돋보이게 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것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었다. 우선 각 이야기의 주인공은 서로 같은 장면에 담긴 적이 있다. 또한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샤오위가 빨래를 하는 방의 벽지는 영화의 타이틀 배경과 같다. 게다가 모든 에피소드는 돈에 의해서 시작되며,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동물은 이야기 속 인물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인 듯하지만 상호적으로 연관이 있다. 불합리한 현실을 참고 견디던 그들의 감정이 폭발해 상황은 폭력적으로 치닫는다. 모든 인물은 누군가 한 명은 죽음을 맞을지도 모르는, 설령 그게 자신이 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도망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4명의 비극적 이야기를 각각 액션·느와르, 무협, 멜로·로맨스와 같은 장르와 결합하여 독창적인 영화 장르를 창조했다. 이러한 장르 창조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예를 들어, 일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저항은 자본 앞에서 결국 무력화되어버린 중국의 '혁명정신'을 의미한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들 역시 <천주정>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물로 사용됐다. 각각 마부에게 채찍으로 맞는 말, 우리에 갇힌 소, 소품처럼 쓰이는 뱀, 비닐봉지에 갇힌 금붕어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인물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말의 경우, 불의에 맞서려다가 폭력을 당하는 따하이를 의미한다. 따하이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이들을 모두 자신만의 정의로 처단한 뒤 말에게 채찍질하는 마부에게도 총구를 겨눈다. 이는 결국 말과 따하이를 동일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후, 말이 혼자 마차를 끌고 가는 장면의 배경음으로 들리는 사이렌 소리와 맞물린다. 이는 따하이 역시 말처럼 구속당하던 무엇으로부터 벗어나 도망을 치지만, 여전히 마차를 짊어진 말처럼, 자본의 그늘 아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우산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트럭 뒤의 우리에 갇힌 소를 마주한다. 이는 목표의식도 없이 청부살인을 하며 현실을 무시하려는 태도의 조우산과 같은 처지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외에도 공연·전시장 속에 갇혀 있다가 도로변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나는 뱀의 모습은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는 샤오위의 모습과 유사하다. 접대부 리엔롱이 키우던 비닐에 갇혀있는 금붕어는 현실에 지쳐 무기력한 샤오후이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동물이 무언가에 학대당하는 모습을 형상화하며, 폭력 속에 갇힌 동물들을 철저히 인물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장면들 모두가 인과관계를 따르고 있으며, 보다 극적인 사건의 전개를 통해 다뤄진 이야기들은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중국 인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미 '사회'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된 곳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주인공들은 '폭력' 혹은 ‘누군가의 사망’을 선택한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그들에게 죄를 묻기보다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사회에 죄를 묻는다.
네 가지의 에피소드는 모두 한 인간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말을 학대하던 주인을 죽이는 따하이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그들을 따라가는 조우산처럼. 동물들의 모습을 인물과 함께 보여주는 장면들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현실에 힘껏 저항해 보지만 결국 파괴되고 무너지는 것은 사회에 퍼져나간 부조리가 아닌 그들 자신임을. 그들이 살아가던 마을이 상징하는 파괴된 중국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나타낸 영화였다.
<천주정>은 칸 영화제 외에도 아부다비 영화제, 대만 금마장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심지어 지난 4월, 서울의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지아장커 감독전’이 열렸고, <천주정>은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제작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에 담긴 중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천주정>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타락한 ‘현실’은 과연 누가, 언제 금지시킬까.
전체적으로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에 대해 다루며 ‘르포르타주’적인 분위기를 낸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적나라하다. 지아장커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중국 동포에 대한 애환을 섞어 영화의 스타일과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또한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뒤에 경극의 대사로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현재 중국 인민들의 심정을 대사 없이 화면에 비추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되묻게 만드는,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다.
서로에 대해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모여 이야기를 구성한다. 각 인물은 서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에는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에게 약간의 책임이 있다.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고 해서 방치했다면, 혹은 사건에 개입하여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대응했다면, 타인의 고통이나 폭력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중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 어느 사회에서든 마찬가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인민들의 얼굴 표정을 통해 관객 모두에게 말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