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문현동 산 23-1번지 일대. 문현동에서 전포동으로 넘어가는 전포고개 일대엔 우리나라 제1호 벽화 마을인 ‘문현 벽화마을’이 있다. 2008년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벽화마을이다. 이 문현 벽화마을이 지난 4월 1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주말, 부산의 대표 달동네에서 벽화마을로 변신한 문현 안동네를 찾았다.
같은 남구 대연동의 경성대학교 앞 정류소에서 남구 10번 마을버스를 타고 여덟 정거장을 가면 돌산마을, 또는 문현 안동네라 부르는 벽화마을에 도착한다. 황령산 자락에 자리 잡은 까닭에 황령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정류장 이름은 ‘전포고개’다. 마을로 들어섰지만, 관광객은 한 명도 없었다. 조용하고 휑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얼마 전 다녀온 감천문화마을과는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문현 벽화 마을은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시민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 부산의 유명 관광지에 위치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지고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다른 관광 거리나 편의 시설도 없었다. 감천 문화마을처럼 예산을 들여 꾸준한 관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는 조용한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오래되어 색깔이 바랜 벽화 그림들,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갈라진 벽은 오히려 촉촉한 감성을 불러 일으켰다.
마을의 모습은 부산이 아닌 것만 같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부산하면 해운대, 광안리와 같은 바다나 화려한 마린시티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은 산에 있었고 쓸쓸한 거리풍경이 있을 뿐이다. 화려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마을 곳곳에 공동묘지의 흔적이 있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문현 안동네 외에도 부산엔 감천2동 고개, 남부민동 산복도로, 서대신동, 보수동 등 부산 피난민의 애환이 서린 동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진정 부산을 이해하고 싶다면 부산의 역사가 담긴 이런 마을을 찾아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걸으며 마을의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데 한 동네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니 누고? 여긴 어쩐 일이고? 사진 찍으러 왔나”라고 할아버지가 물었다. “네 할아버지! 저 벽화 마을 구경하러 왔어요.” 이에 할아버지는 반갑다는 듯 동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여기가 하늘 아래 첫 동네다이가. 이제 재개발로 사라진다카이. 섭섭하네. 허허..” 할아버지는 잠깐 상념에 빠진 듯했다.
한때는 사진 찍는 이와 관광객들로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던 문현동 벽화 마을. 2008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주거환경 부문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쓸쓸한 골목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재개발 계획이 세워져 이 마을은 곧 없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관광객이 많고 시끌벅적한 곳도 좋지만, 옛 정서와 부산의 역사가 남아있는 문현 벽화마을을 호젓하게 걸어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조용하고 차분한 이곳을 걷다 보면 부산의 역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곧 재개발로 남은 집들이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설 이곳에 대해, “마을이 없어지기 전에 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 왔으면 좋겠다”고 마을 주민들이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