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예언자이다(Eşhedu enlâ ilâhe illallah ve eşhedu enne muhammeden abduhu ve resuluhu)”
동도 트기 전, 귓가에 들려오는 이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기자가 살며시 눈을 떠보니, 무슬림인 룸메이트 엘리프 누르 카르(19, Elif Nur Kar) 씨가 히잡을 쓰고 이렇게 주문을 외우며 기도하고 있다. 그의 하루는 새벽 5시 30분 집 근처 모스크(이슬람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첫 아잔(Azan: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과 함께 시작된다. 아잔 소리가 들리면, 신도들은 하나둘 모스크로 모여들어 손발과 얼굴을 씻은 뒤, 카펫 위에서 메카(성지)를 향해 경배를 드린다. 현대에 이르러 이슬람 신자들은 자기가 있는 곳 근처에서 매번 모스크를 찾기 힘들어지자, 집이나 일터에서 기도하기도 한다. 기자는 길을 지나며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현재 기자가 머물고 있는 이곳 이스탄불이 틀림없는 이슬람 국가, 터키임을 실감한다.
카르 씨는 외출할 때 항상 히잡을 쓴다. 그녀는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대로 음주나 돼지고기 섭취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오랜 습관에 따라 ‘인샬라(알라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말을 내뱉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하루 최소 네 번은 모스크에 들러 기도한다. 그녀는 자신을 독실한 무슬림이라고 표현한다. 이곳에서 카르 씨 같은 신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히잡을 쓴 여성은 물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역시 지나치는 버스 정류장마다 보일 정도로 흔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무슬림답지 않은 무슬림, 이른바 현대판 무슬림(아마도 세속주의자)의 모습도 주변에서 쉽게 눈에 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일반적이다. 온몸을 천으로 감싼 전통적인 무슬림 옷차림과는 거리가 먼 배꼽티와 레깅스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 중 일부는 무슬림이다. 또 서울의 명동이나 뉴욕의 5번가 못지않게 명품 상점과 드레스 가게가 즐비한 번화가나 주말 저녁 술집과 클럽을 찾는 젊은이들로 붐비는 탁심 광장(서울의 명동, 부산의 광복동 같은 곳)도 이곳이 과연 이슬람 국가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다.
오칸 아테쉬(20, Okan Ate) 씨는 무슬림이지만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파티도 즐긴다. 그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모스크에 가지 않고 코란도 읽지 않는다”며 “친구들 대부분이 나와 마찬가지일 뿐더러 몇몇은 아예 무교라 말하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터키 특유의 무슬림들의 모습과 더불어 다른 종교와 조화를 추구하려는 움직임도 터키에서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스탄불 방문이다. 터키가 한 때 적대시하던 기독교의 한 종파인 로마가톨릭 교황을 초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거 닫혀 있던 터키식 이슬람교가 공존을 지향하는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 꾸준히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을 반기던 우리 국민들만큼의 뜨거운 열기는 아니었지만, 많은 이스탄불 시민들은 교향을 보고 ‘파파(Papa)’를 외치며 환호했다. 현장에서 만난 세진 산 순구나이(25, Sezin San Sungunay) 씨는 교황의 방문이 기쁘다고 외쳤다. 그는“나 역시 한 명의 신을 믿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무슬림이지만 때때로 교회에 들르기도 한다”며 “이슬람교와 코란이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다른 종교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종교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탄불은 1453년 오스만제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무려 1000여 년 동안 기독교가 국교였던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되어 기독교 문명의 중심지였다. 이후 이스탄불이 이슬람 국가인 터키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난 지는 불과 9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많은 문명과 종교를 경험했던 이곳이 원리주의가 아닌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