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영상 속에 한 남자가 길을 가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는다. 그는 떨어진 물을 탓하기보다는 그 물이 떨어지는 곳에 말라비틀어진 나무 화분을 가져다놓는다. 나무가 물을 먹고 생기를 찾는다. 장면이 바뀌면서, “교육을 위해”라는 문구를 들고 구걸하는 모녀를 발견한 남자는 선뜻 모녀에게 작은 돈이지만 적선한다. 광고 영상은 그 남자의 작은 선행을 계속 보여준다. 그 남자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바나나를 주고, 집 없이 방황하는 개에게도 밥을 나눠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주변사람들은 남자의 행동을 별로 탐탁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남자는 그런 작은 선행을 매번 반복한다. 그때 이런 자막이 나온다. “그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 부자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TV에 나와 유명해지지도 않는다.”
광고 영상이 이어지며, 세월이 지나 그 남자가 한 일의 뒷얘기를 보여준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는 새싹이 피어나서 번창하고, 구걸하던 여자의 딸은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된다. 바나나를 매번 얻어먹던 할머니는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고맙다며 남자를 꽉 안아준다. 그리고 이런 자막이 깔리며, 광고 영상은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가 얻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는 행복을 목도하고, 사랑을 느끼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SNS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낸 태국의 한 보험 회사 영상 광고다. 한국 광고홍보학회 연구 자료에 따르면, 창의적인 광고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태국은 세계 3대 광고제(클리오광고제, 칸국제광고제, 뉴욕페스티발) 중 하나인 칸광고제 2008년 대회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무려 33편의 수상작을 배출했다. 태국은 관광의 나라보다는 광고의 나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그 유명한 태국 광고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1월에 1주일간 태국을 방문했다.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도로에서부터, 기자 일행은 태국이 광고의 나라임을 실감했다. 도로마다 광고판 천지였기 때문이다.
기자 일행은 태국 광고 취재 2일째인 1월 22일 태국 광고의 기발함과 크리에이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는 태국광고센터(TCDC: 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를 찾아갔다. 때마침 태국 학생들이 TCDC에 견학 와서 관람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학생은 “좋은 시설을 가진 TCDC에서 광고를 공부하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이 공간은 수많은 광고 관련 도서를 구비한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 많은 학생들이 광고를 공부하며 광고인의 꿈을 키워나간다. 이미 태국 광고의 명성을 들은 외국 관광객들도 이 광고도서관을 필수 관광 코스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여권만 있으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태국은 광고천국, 광고대국이었다. 태국 어디를 가나 광고가 중심에 있었다. 태국의 전철인 BTS(Bangkok Mass Transit System) 객차들은 아예 광고로 뒤덮여 있었다.
BTS를 기다리는 역 구내 곳곳에도 역시 과할 정도로 광고로 도배돼 있었다. 지하철을 타서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탓에 지하철 광고판이 점점 비어가는 우리나라에 비해, 태국 전철은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BTS을 기다리는 태국인 메이(24) 씨는 “우리에게는 광고가 일상이다. BTS에 덮여있는 광고나 주변 옥외광고가 별로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태국 지하철 역사의 바닥, 에스컬레이터에도 광고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고, 태국 버스에도 예외 없이 광고가 버스를 압도하고 있었다. 한국 버스들도 광고가 있지만, 태국 버스 광고는 그 크기가 달랐다. 버스 외벽 전체가 광고로 도색돼 있었던 것이다.
태국 광고는 대중 교통수단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기자 일행은 도로의 대형 건물 외벽을 보고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아니 저것은?” 하고 일행이 외마디 소리를 지른 것은 다름 아닌 한 빌딩 외벽 한 면을 뒤덮고 있는 광고 때문이었다. 빌딩 한 채가 거대한 광고탑이었던 것이다.
태국 사람들은 수많은 광고 속에 살면서 광고가 그들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콕의 한 시민은 “생활 속에 광고가 엄청 많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광고를 보고 싶으면 보고, 안보고 싶으면 안보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태국의 옥외광고는 말할 것도 없지만 TV광고도 대단했다. KBS 등 공중파 방송에서는 아직도 허용되고 있지 않은 중간광고가 태국 TV에서는 기본이었다. 호텔에서 보여주는 태국 TV는 TV의 존재 이유가 광고 때문인지 방송 콘텐츠 때문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대홍 커뮤니케이션즈 2007년 자료에 따르면, 태국 광고는 드라마보다 더 재밌어, 태국 시청자들은 드라마보다 광고시간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방콕 시민 누카이(34) 씨는 “드라마보다 중간 광고를 기다릴 때가 많다”고 밝혔다.
태국에 광고가 없는 곳은 없었다. 광고는 태국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였다. 태국 광고의 특징은 그것이 비록 제품을 선전하고 상업적 이윤을 얻고자하는 수단이지만 가급적 직설적으로 광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태국 광고는 재밌고 감동이 있었다. 때로는 그 감동이 강해서 이게 무슨 광고를 하는 것인지조차 짐작이 안가는 광고도 많았다.
청주대 광고학과 정상수 교수는 태국 자체가 근대화 과정에서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광고 역시 광고 선진국인 유럽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지적한다. 정 교수는 “태국 광고는 일본 광고의 영향을 받은 한국 광고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광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못 했어도 낙천적인 국민성이 좋은 아이디어 내는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