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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사랑한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 '성가족 성당'은 아직도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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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사랑한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 '성가족 성당'은 아직도 미완성
  • 취재기자 류효훈
  • 승인 2018.09.23 22: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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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 류효훈 기자 스페인 탐방기② 시민들 기부금으로 130년 동안 공사 중, 3개의 파사드 '눈길'
공원에서 찍은 가우디 성당의 모습이다. 전체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가우디 성당 뒤쪽에 위치한 공원으로 가야한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경이롭다.” 베를린 워킹홀리데이 도중 자유여행으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주 높고 큰 성당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말이다. 그 성당의 이름은 바로 가우디, 혹은 성가족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이다. 성가족 성당은 바르셀로나의 성자이자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남겼던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말처럼 130년 동안 여전히 지어지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4박 5일을 지내는 동안 나는 자유여행으로 가우디 투어를 하기로 결심했다. 대체 누구이길래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사람일까 하고 말이다. 바르셀로나의 첫 인상은 질서정연했다. 바둑판처럼 배열된 건축물 속에서 가우디의 건축물은 빛이 났다. 그가 지은 카사 비센스,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저택과 공원은 규칙처럼 배열되어 있는 건물사이에서 유독 독특했다.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은 가우디 성당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건물 중에서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며 130년 동안 지어지고 있는 그 성당 말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스페인어로 성가족이라는 뜻으로 바르셀로나 한 상인의 신앙심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일반 시민들이 속죄할 성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상인 보까베야는 성요셉신앙인협회를 설립해 성당을 지을 기부금을 모았다. 이후 1882년 3월 19일, 성 요셉의 축일에 맞춰 성당에 초석을 놓으며 성가족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우디가 성당 공사를 맡은 것은 아니다. 당시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교수였던 비야르가 총감독을 맡아 시작했다. 하지만, 공사 도중 성가족 성당 지하 예배당에 쓰이는 자재들로 인해 협회와 대립한 비야르가 사임해 후임으로 가우디가 들어오게 된 것. 성가족성당의 설계와 건축을 맡은 가우디는 전임 건축가이자 건축학교 스승이었던 비야르의 설계도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설계도를 제작했다. 새로 설계된 성당의 외부는 예수의 탄생, 죽음, 부활을 상징하는 세 개의 파사드, 12사도들의 표현한 12개의 첨탑, 4명의 복음사가, 마리아, 예수를 나타내는 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우디 성당의 입구에서 바라본 가우디 성당의 '탄생의 파사드' 전체 모습이다. 어마어마한 크기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성가족성당은 입구부터 화려했다. 가우디가 살아 있는 동안 완성된 ‘탄생’의 파사드가 사실적인 묘사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나는 마치 성경이 묘사한 예수 탄생 대목을 읽는 듯했다. 탄생의 파사드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의 조각상들, 소년기 예수의 조각상들, 성모마리아의 대관식 등 다양한 조각상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장면부터 소년기 예수, 성모마리아의 대관식 등의다양한 조각상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성가족성당에 장식된 에수 탄생 파사드(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탄생의 파사드를 거쳐 성가족 성당의 내부를 들어가자 마치 자연의 숲에 들어 와있는 듯했다. 내부에 있는 수십 개의 기둥은 마치 나무와 같았고 붉은색의 빛과 푸른색의 빛이 채광창을 통해 성당의 내부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외에도 예배당, 영광의 파사드(지어지고 있는 중이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성가족 성당 내부의 경당. 관광객들은 들어가서 기도를 드릴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예배당 정중앙에 매달려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성당을 지탱하는 수십 개의 기둥은 스페인 전국의 사제단 및 복음사가 등을 상징한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탄생의 파사드 쪽 벽면의 채광창에는 푸른색의 빛이 들어와 숲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반대편 수난의 파사드 쪽 벽면 채광창에는 붉은색의 빛이 들어와 고난을 겪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특히, 채광창에는 전 세계 사제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데 이곳에는 한국인 신부의 이름도 있었다. 바로 한국 최초의 신부이자 선교자였던 김대건 신부가 A. KIM이라는 이름으로 수난의 파사드 쪽(붉은색) 채광창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수 많은 채광창 중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김대건 신부의 영어이름(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높고 넓은 성당 내부를 지나 밖으로 나가면 수난의 파사드를 볼 수 있었다. 수난의 파사드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있는 모습,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모습 등 예수의 수난을 표현해낸 곳이다. 탄생의 파사드와 꽤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알고 보니 가우디가 죽고 난 후에 스페인의 조각가 수비라치가 자신만의 조각 기술로 완공했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수난을 표현해낸 수난의 파사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예수의 수난을 표현해낸 수난의 파사드다 곡선적인 모습이 많았던 탄생의 파사드와는 달리 직선적인 모습이 강하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예수의 수난을 표현해낸 수난의 파사드. 곡선적인 모습이 많았던 탄생의 파사드와는 달리 직선적인 모습이 강하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수난의 파사드의 출구에서도 예수의 수난이 묘사됐다(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수난의 파사드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마지막으로 성가족성당의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성당이 어떻게 해서 지어졌는지, 어떤 도구를 썼는지, 가우디의 무덤 등 다양한 성가족 성당의 건축유산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관람하는 도중 나는 가우디 성당의 특별한 곳과 마주했다. 바로 성당이 지어지면서 사용됐던 작업실이다. 100년 전과의 모습을 비교해서 관람할 수 있는 작업실에는 하나하나 설계도를 그리며 모형물을 만들었던 그 자리가 3D프린트로 대체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를 존중하고 어떻게 공존해야하는 줄 알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기보다는 철거하며 새로운 건물을 짓는 한국과는 대비된 모습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파그라다 사밀리아 성당의 작업실 모습(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지하에 위치한 파그라다 사밀리아 성당의 작업실 모습(사진: 취재기자 류효훈).
100년이 넘는 작업실이 아직까지도 사용될 만큼 천천히 지어지고 있는 성가족 성당은 오로지 시민들의 기부금만으로 지어지고 있다. 가우디가 남긴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느리더라도 정부나 외부의 세력이 아닌, 온전히 시민들의 것이 되어야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의 죽음이 100년째가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여전히 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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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rongi 2018-10-08 10:54:51
직선과 곡선의 차이는 가우디와 그 제자의 작품 세계의 차이이겠지요? 그만큼 가우디는 자연과의 조화 자연에 가까운 작품을 추구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