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전문가 한형조 교수에게 인문학의 길을 묻다 / 차용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철학 전공 한형조(56, 韓亨祚) 교수. 동양고전의 현대적 해설을 통해 삶에의 통찰과 행복의 길을 전파하는 한국 인문학계의 쟁쟁한 고수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동양철학을 오늘 ‘삶의 문제’로 널리 귀환시킨 입심 좋은 얘기꾼‧인기 높은 글쟁이다.
[약력] 1958년 경북 영덕 출생. 경남고, 서울대 철학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졸업(철학박사). 동양철학과 고전에 천착하며, 동아시아 전통 속에서 미래 인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옛 고전을 우리 시대 언어로 불러내는 작업에 열중, ‘인문학의 대중화’에 헌신한 공로로 제4회 민세(民世)상 수상(2013). 저서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강의 세트 시리즈' <붓다의 치명적 농담> <허접한 꽃들의 축제>(2011), <왜 동양철학인가>(2009), <왜 조선 유학인가>(2008), <조선 유학의 거장들>(2008),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1999), <주희에서 정약용으로>(1996) 등 다수. 에드워드 콘즈의 <불교>와 가마타 시게오(鎌田茂雄)의 <화엄의 사상>을 번역했다. 계간 ‘문화와 나’에서 ‘아시아의 고전들’을, ‘중앙선데이’에서 ‘교과서 밖 조선 유학’ 이야기를 연재했다. |
인문학, 인간적 삶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
Q. 가히 인문학 열풍이다. 사전적으로 ‘인간의 사상▫문화를 탐구하는 학문’, 그 인문의 열기가 뜨겁다. 인문학, 도대체 뭔가? 동양철학에 정통한 인문학자로서, 현대적 어법으로 설명해 달라. “인문학은 삶의 기술(The Art of Living)을 배우고 연마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에서의 종교, 철학 모두 자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랑과 성장, 삶을 존중하고 겸손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인문학은 인간적 삶을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고 할까.” 철학에 바탕한 인문학자 한형조는 인문학의 효용 몇 가지를 든다. 첫째,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둘째, 삶을 견뎌내는 기술을 습득시키며, 셋째, 의미와 유대를 강화하는 훈련을 시켜 준다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의 기술은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이며, 고전‧역사의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통해 위로를 받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강조다. Q. 인문학, 어떤 값어치가 있어 오늘, 그토록 열풍인가? "최근 우리 사회가 인문학을 배우려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을 넘어, 정신적‧육체적 조화를 이루는 '웰빙(wellbeing)'에의 요구가 커졌다는 의미다. 누구나 그 ‘삶의 기술’을 원하지만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곳곳에서 인문의 열기는 뜨겁고 강좌는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는 고은 시인의 시 <그 꽃> 구절을 들어 인문학의 가치를 설명한다.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본/그 꽃”-우리 인생도 나이 40, 50에 들어서면 꺽어진다, 내려갈 때 보면 그동안 올라갈 때 봤던 것과는 또 다른 가치, 또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소홀히 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막 뛰기만 하던 삶에 또 다른 가치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놓친 삶의 진실들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게 인문학의 가치다, 이런 얘기다. 그는 일반대중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얘기하며 우리의 물질적 풍요에 미치지 못하는 행복 수준을 지적한다. 실상, ‘성공한 국가’-대한민국의 세계 속 경제위상은 경이롭다. 한국은 2012년 ‘20·50클럽’에 가입했다. 세계 7번째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국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 선진국 말곤 한국이 유일하다. ‘불행한 국민’-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26위. 교육, 일자리, 치안 항목의 높은 평가에, 환경(29위), 일과 삶의 균형(30위), 공동체 생활(33위) 항목에서 최하위권이다. 갤럽 조사 결과, 세계 148개국 중 97위다.우리, 자기 마음‧상대방 마음부터 배워가야
Q. 오늘을 사는 우리, 인문학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인간’ 자신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르고, 특히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람을 하나의 수단으로 대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물’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는 특히 '나' 자신부터 제대로 다뤄야 함을 강조한다. 인문학의 중심은 물질이 아닌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눈치가 없으면 곤란하다 싶어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것. 그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고를 인용했다.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는 자는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Q. 사실 행복은 온 인류의 변함없는 소망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뭔가?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주자학자의 눈으로 요즘 한국인을 보면, ‘노(怒·분노)’와 ‘애(哀·슬픔)’가 주축이다. 반면 ‘희(喜·기쁨)’와 '락(樂·즐거움)'이 약하다. 그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평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코드는 ‘분노’와 ‘슬픔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기쁨'은 지속적이고 은근한 기쁨, '즐거움'은 손발을 고양시키는 존재의 흥분을 말한다. 그게 곧 행복 아니겠나."인문학 공부, ‘기쁨’ 얻는 과정... 독립적 삶 안겨
Q. 그런 행복을 어떻게 일굴 수 있을까? "공부하는 삶이 바로 그 통로이다. 공자가 말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를 기억할 것이다. ‘배우고 익힘’은 스스로를 엔터테인먼트한다는 말과도 같다. 곧 인문학 공부는 ‘기쁨’을 얻는 과정이며, 이로써 ‘분노’와 ‘슬픔’을 불식할 수 있는 처방이기도 하다. 배움으로써 얻어진 기쁨은 독립적이고 세련된 삶을 안겨준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이 눈물의 골짜기, 고해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비책은 오직 ‘공부하는 삶(intelellctual life)’에 있다고 역설했다. 존재의 충일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배워라. 상처로부터 배우고 고전으로부터도 배워라. 그를 통해 우리는 고통 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 그렇게 터득한 이치가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지혜롭게, 행복하게 한다. 결국 행복이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찾아오는 건 아닌 것이다.“ 최근 출간작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2014)에도 한형조 교수의 행복론이 들어 있다. 이 책, 행복을 화두로 놓고 17명의 인문학자·과학자·예술가를 만난 기록이다. ‘행복’이란 미지의 대륙에 대한 탐사 보고서다. 행복의 형태와 질감, 색깔과 맛을 찾으려는 시도다. 철학자에게 상처와 힐링을 캐묻고 뇌과학자에게 행복의 근원을 따진다. 천문학자와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시인과 선악을 논한다. 그의 행복론 제목 역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이다.동양고전, 현대 물질문명 폐단 해결할 효과적 대안
Q. 현대사회에서 동양고전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현대사회는 왜 인문학의 가치를 강조하나? 산업화를 통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그동안 소외되어온 ‘인간의 정신’을 돌아보고, ‘인간 존재의 가치’를 되찾는데 인문학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동양고전은 현대 물질문명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이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과 특유의 레토릭으로 강조한다. 동양의 고전 중엔 동양의 대표적 철학자, 문학가의 정신을 오롯이 담은 주옥 같은 작품,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과 세계, 인간자아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객관적 관조를 가능케 하는 명작들이 즐비하다고. 그런 면에서, 동양고전은 파고들어 씹고 또 씹을 때 그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인생의 고전(苦戰)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라고-.<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명강; 동양고전>(2013)-을 보라. 쟁쟁하고 쟁쟁한 학자 13명이 동양고전을 빌려 들려주는 삶과 앎 얘기가 뛰어나고 맑다. 한 교수는 이 책에서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풀어 얘기한다. 1577년 율곡이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한형조 편②]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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