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걷기, 송정 바다에서 서핑하기, 그리고 느림과 쉼이 있는 옛 송정역 풍경 즐기기 / 도민섭 기자
나는 이제 역사가 되려합니다.
더 이상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바다와 멀리
더 이상 싣고 추억할 수 없는 사람들 떠나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갑니다.
- 송정역 표지판 중 -
간이역이란 일반 역과는 달리 역장이 없는 기차역을 말한다. 바닷가 간이역은 단출하고 경쾌하다. 옛 송정역도 그렇다. 원래 이곳은 ‘송정역’이었으나 2013년 기차가 다니는 ‘송정역’이 다른 곳에 신설되고, 폐선된 이곳은 그저 ‘옛 송정역’이 됐다. 간이역 건물은 대개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하고 그 아래 중앙에 출입문을 배치한다. 그런데 옛 송정역 건물은 출입문을 중앙에 맞추지 않고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했다. 사람으로 치면 입 한쪽을 씩 올리며 웃는 형상이다. 사실 이 모습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기차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부산시 해운대구 송정동에 위치한 옛 송정역은 1934년 간이역으로 시작했다. 당시 송정 바닷가 일대 농수산물과 공업지대의 원료 및 제품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 1960년대부터 해운대, 경주 등을 찾는 낭만적인 철길역으로 각광 받았다. 1965년 송정해수욕장이 생기고, 동해남부선은 더욱 인기였다. 송정역은 일제 강점기 기차역으로서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어 2006년 부산 최초로 간이역으로서 등록문화재 제302호로 지정됐다.
지난 2013년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가 완료되어 이곳은 폐선되고 근처에 새로운 송정역이 생겼다. 옛 송정역은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기차를 타고 해안 절경을 관람할 수 있는 동해 남부선 해안 철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송정동 주민 천성범(2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초등학생 시절, 경주에 있는 할머니 댁을 갈 때 옛 송정역을 자주 이용했다. 지금은 새로 지어진 송정역을 이용하지만, 옛 송정역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말했다.
현재 옛 송정역 역사는 운영 중이지 않다. 9월까지 부산시 도시재생 부서의 지원을 받아 송정 주민이 직접 만든 컵케이크와 수공예품‧중고물품 등을 파는 ‘파도소리 송정역 갤러리’로 운영 중이었으나, 10월부로 운영을 멈췄다. 도시재생부 한 관계자는 “파도소리 송정역 갤러리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관광객인데 겨울에는 송정을 찾는 관광객들이 적을 뿐더러, 갤러리에 참가하는 송정 주민도 줄었다. 추후에 다시 운영할지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송정동 주민인 이경숙(41) 씨는 파도소리 송정역 갤러리에서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판매했다. 이 씨는 “취미로 만든 것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좋았는데 다시 운영했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역사로 들어가 반대편 철길이 있는 곳으로 나오면 조형물들이 여러 개 보인다. 자갈밭과 좁은 선로를 따라 걷다 보면 송정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백사장 길이가 1.2km, 폭 57m에 이르는 해수욕장이다. 해운대에 비해 분위기가 소박하고 수심이 얕고 파도도 거칠지 않아 물놀이 즐기기에 적합하다. 또한 울창한 송림으로 유명한 죽도 공원도 바로 옆에 있어 산책하는 즐거움도 있다. 최근에는 서핑의 최적지로 입소문을 타고 많은 서핑족들이 찾고 있다. 송정해수욕장에서 2년째 서핑을 즐기고 있는 임채정(31, 부산시 수영구) 씨는 숨 막히는 도심 속 삶을 피해 서핑을 시작했다. 임 씨는 “송정해수욕장은 서핑을 즐기기에 수심도 적당하고 자연경관이 좋다. 서핑을 할 때는 스트레스가 싹 잊힌다.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산책로로 변한 폐선 구간은 현재 일부분 공사가 진행 중이다. 부산시 건설본부 한 관계자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만큼 휴식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이라며 12월 말에 공사가 마무리되므로 내년에 잘 이용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폐선 구간 옆으로 산책로가 있어서 공사중이라도 이용하는데 지장은 없다. 폐선의 종착지인 미포마을은 옛 송정역으로부터 4.8km 지점 ᄄᅠᆯ어져 있다.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러 온 정소영(24, 울산시 남구) 씨는 “폐선을 걸으면서 데이트하고 있는데 경치도 좋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이곳이 최고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광객인 윤지수(20, 부산시 기장군) 씨는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지고 난 후에는 깜깜하고 어둡기 때문에 폐선 철길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낮에 가는 것이 좋다.
부산시는 천혜의 자연적 경관을 가지고 있는 동해남부선 폐선 철길 구간을 ‘갈맷길 1코스 2구간’에 추가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갈맷길’은 부산에만 있는 올레길로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다.
작년에는 동해남부선 폐지를 이용해 워킹투어와 같은 걷기 행사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폐선 구간 공사가 있어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송정동 사무소 행사 관계자는 “공사가 올해 끝나기는 하지만 내년 행사 계획은 아직 짜여있지 않다. 내년이 돼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옛 송정역은 바다 내음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함께하기에 더욱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스피드 위주의 생활에서 느림과 웰빙을 추구하고 싶다면 폐선 철길을 따라 멈춰진 열차처럼 느리게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