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재보궐 선거가 끝났습니다. 규모는 ‘미니’지만 정국에 미칠 파장은 태풍급일 거라던 세간의 전망처럼 선거기간 내내 전투는 치열했고, 그만큼 투표율은 높았고, 결과 또한 드라마틱했습니다.
언론은 ‘절묘한 민심의 선택’이란 평가로 판정을 유보했지만, 호사가들의 관전평은 선거공학적 분석의 바탕 위에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선거는 결국 자기편 결집이라는 대전제만큼이나 결과의 해석 또한 아전인수의 각축장이 되기 마련이지만, 압권은 역시 당 대표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번 결과는 민주당과 정의당 공동의 승리이자 창원 성산의 미래를 선택한 시민 모두의 승리”라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사회 개혁을 바라는 창원 시민들의 열망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민주당의 불모지에 가까운 통영, 고성에서 큰 성과를 남겼다”며 “아쉽게 당선되지는 못했으나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확인했다”고 자평했습니다.
반면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국민들께서 지금 이 정부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하신 것으로 본다”며 “한국당에게 무너져가는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회복하라는 숙제를 주셨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서 반드시 다음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각자가 서로의 승리를 선언한 셈입니다. 절묘한 민심의 선택은 누구도 승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데, 서로가 승자라고 우겨대니 쇠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습니다.
청와대가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참 궁금합니다. 분명한 것은 민심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창원 성산구는 ‘진보정치 1번지’라는 명성처럼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던 19대 총선을 빼고는 17, 18, 20대 총선에서 모두 진보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그래서 ‘504표 승리’를 승리라고 하기는 옹색합니다. 보수표인 대한애국당 후보가 얻은 표만 아니더라도 결과는 바뀌었습니다.
통영, 고성은 1년 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모두 승리한 곳입니다. 이번에도 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해서 예산폭탄에, 성동조선 살리기에, KTX 역사까지 약속하며 집권여당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던지고 소지역주의에 호소도 했지만 결과는 1년 전과 정반대였습니다.
청와대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의혹과 사퇴, 인사 청문 과정에서 드러난 장관 후보자들의 흠결과 낙마, 이런 단편적인 요인들이 1년 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줄 믿습니다.
상촌 신흠 선생은 ‘치란편(治亂篇)’에서 “무릇 국가는 큰 그릇이다. 그 다스림이 하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어지러움도 하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길기도 긴 적폐청산에 지치고 갈라진 민심이 있고 만병통치 북핵에 밀려난 국민의 살림살이가 있습니다.
조짐은 아침 저녁 사이에 달려 있지만 징험은 여러 해 뒤에 드러난다는 상촌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기시기 바랍니다.
여야가 모두 이겼다고 우기는 것이야 정치판의 생리쯤으로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청와대마저 이번 재보선의 결과를 안일하게 받아들인다면 장차 그 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승자라고 우기는 마당에 청와대라도 패자를 자처하여 국민만 패자가 되는 낭패는 막아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의 시계는 1년 뒤인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향해 갑니다. 재보선의 민심은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 내가 아프고 힘들다는 국민의 절절한 하소연임을 안다면, 1년 뒤 벚꽃이 만개한 봄의 절정에서 “이산 저산 꽃이 피니 진정코 봄이로구나”하며 사철가를 부를 날이 있을 겁니다.
항상 좋은글에 감사드리며 한국에서의 아름다운 봄을 온몸으로 느끼시길 바랍니다